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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믿음을 택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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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사미디어 등록일 2024.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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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은 하나였습니다. 목말라 죽겠다고 아우성치고, 양식이 떨어졌다고 불평하고, 보이지 않는 모세를 대신하겠다며 금송아지를 만들었을지언정 그들은 가나안을 향해 전진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기대, 하나님이 그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믿음에서 그들은 하나였습니다. 가나안으로 향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가데스 바네아에 이르러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아우성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열두 정탐꾼이 가져온 서로 다른 보고를 들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은 마른 대나무 갈라지듯 두 쪽으로 나뉘었습니다. 절대로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다는 절대다수의 믿음과 넉넉히 들어갈 수 있다는 절대소수의 믿음으로 갈라졌습니다. 어떤 사람도 한쪽 편을 택하도록 강요받지 않았습니다. 하늘과 땅처럼 다른 두 가지 믿음 중에서 하나를 각자가 선택했을 뿐입니다.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이 곁에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가나안의 견고한 요새는 차지할 수 없다는 믿음을 선택한 절대다수 백성은 “애굽으로 돌아가자”(민 14:4)라고 소리쳤습니다. 이는 당연한 일입니다. 들어갈 수 없는 가나안인데 한 발짝이라도 걸음을 옮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들어갈 수 없다’는 믿음이 그들의 방향을 결정했고 결국 믿음대로 되었습니다. 반면에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민 13:30)라고 외친 갈렙과 여호수아는 일평생 가나안을 향해 나아갔고 마침내 약속의 땅에 들어갔습니다. ‘들어갈 수 있다’는 믿음이 그들의 방향을 결정했고 결국 믿음대로 된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광야 이스라엘 백성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모든 그리스도인 아니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에게서 반복되는 역사입니다. 어떤 믿음을 선택하느냐가 인생과 신앙의 방향을 결정하고 결국은 그 믿음대로 됩니다. 우리가 흔히 ‘믿음 장’이라고 부르는 히브리서 11장에 이름을 올린 이들이 그 증거이며, 손에 잡았던 구원을 잃어버린 사람들 또한 쌍둥이 증거입니다. 가나안에 들어간 두 사람과 들어가지 못한 절대다수의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이 그랬듯이 현대 기독교 안에도 두 종류의 믿음이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하나는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할 수 없다는 절대다수의 믿음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면 순종할 수 있다는 극소수의 믿음이 그것입니다. 


먼저 불가능하다는 믿음을 살펴보겠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요리문답』이라는 문서가 있습니다. 이는 장로교를 비롯한 대부분의 기독교회에서 금과옥조로 여기는 문서입니다. 이 교리 문답서 149번의 질문과 답변은 다음과 같습니다. 


[문] 누가 하나님의 계명을 완전하게 지킬 수 있습니까? 

[답] 아무도 자기 스스로, 이생에서 받은 어떤 은혜로도 하나님의 계명을 완전하게 지킬 수 없고, 오히려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매일 계명을 범합니다.


“아무도 자기 스스로” 하나님의 계명을 완전하게 지킬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 없는 사실이지만 문제는 그다음 진술입니다. “이생에서 받은 어떤 은혜로도 하나님의 계명을 완전하게 지킬 수 없고, 오히려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매일 계명을 범”한다는 주장은 하나님이 어떤 은혜를 주셔도 계명에 순종하는 삶은 불가능하다는 철석같은 믿음입니다. 이는 열 재앙을 무사히 통과하고, 홍해는 마른땅 건너듯 건넜지만 가나안에는 절대 들어갈 수 없다고 확신하던 이스라엘 백성과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강력한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에 기초한 한 저명한 신학자의 다음 진술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인간에게 주실 때 이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아셨으며 또 기대하지도 않으셨습니다”(M. R. 디한, 율법이냐 은혜냐, 19). 


어떤 나라도 사람이 지킬 수 없는 법이나 지키기를 기대하지 않는 법을 만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는 것이 이 신학자의 주장입니다. 인간의 행복을 위해 법을 제정하고 선포하신 하나님이, 성경에 계명을 사랑하고 지키라고 수없이 반복하신 하나님이 계명을 지킬 것을 기대하지도 않으셨다는 이 진술은 놀랍고 동시에 두렵고 이상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이 이 주장에 고개를 끄덕인다는 사실입니다. 


계명에 순종할 수 없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의 삶에 맺히는 열매가 있습니다. 그들은 계명을 지킬 수 없는 이유와 지키지 않아도 되는 핑계를 찾고, 계명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므로 죄를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또한 부담스러운 계명의 가치와 필요성을 최대한 낮추거나 부정하며, 계명에 순종하는 사람을 미워하고 공격합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미워하고 그 계명에서 돌아섭니다. 가나안으로 향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향해 돌아선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다면 기독교 안에 계명에 순종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계명에 순종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 즉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에게 계명에 순종할 수 있는 은혜와 능력을 주신다고 믿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존재해 왔고 지금도 존재합니다. 다만 그 수가 갈렙과 여호수아만큼 적어서 눈에 잘 띄지 않을 뿐입니다. 그들은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 5:3)라고 한 사도 요한의 고백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 순종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계명에 순종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의 삶에는 어떤 열매가 맺힐까요? 그들은 계명을 지켜야 하는 이유와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지키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며 회개합니다. 또한 계명을 존귀하게 여기고, 그 가치를 높이며,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계명에 순종하는 사람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향하여 살아갑니다. 오늘 당장 모든 계명에 순종하지 못하더라도 순종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 방향으로 전진합니다. 마치 가나안을 향해 살다가 마침내 가나안에 들어간 갈렙과 여호수아처럼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요리문답』의 “이생에서 받은 어떤 은혜로도 하나님의 계명을 완전하게 지킬 수 없”다는 진술입니다. 생각할수록 이상한 믿음입니다. 이는 마치 아무리 유능한 의사라도 내 병은 고칠 수 없다고 믿는 어리석은 환자의 믿음과 같지 않습니까? 이생에서 받는 어떤 은혜로도 하나님의 계명을 완전하게 지킬 수 없다면 이는 어떤 하나님의 은혜도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말 아닌가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는 우리에게 없고, 우리가 만들 수도 돈을 주고 살 수도 없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 은혜가 임할 때 죄인이 회개하고, 일평생 집착하던 죄를 버리는 일이 일어나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초자연적인 역사가 일어납니다. 한마디로 사람이 절대 할 수 없는 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모든 필요를 채우고 죄인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에 넉넉하고 충분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제 다시 믿음으로 돌아가 봅시다. 현대 기독교 안에 두 종류의 믿음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생에서 받은 어떤 은혜로도 계명에 순종할 수 없다는 믿음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계명에 순종할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믿음을 선택하시겠습니까?



​- 박상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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