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번을 꺾여도 동으로 흐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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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사미디어
등록일 2023.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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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엔 물이지
기후 변화로 인해 우리는 예년보다 더 길고 지루한 여름을 보내고 있다. 연일 가마솥더위가 기승을 부리니 사람들은 무성한 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드리운 계곡으로 가서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거나 계곡 웅덩이로 ‘풍덩’ 뛰어들어 무더위를 한 방에 날려 버리고 싶어 한다. 요즘처럼 불볕더위가 한창인 때에는 그냥 앉아만 있어도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등골을 따라 주르륵 흐른다. 그렇기 때문에 이토록 찌는 듯한 더위를 이기기 위해 사람들은 계곡이든 강이든 바다든 물을 찾아 떠난다. 물로 뛰어들면 직접 피부로 시원한 청량감을 느낄 수 있으며 잠시 더위를 잊을 수 있다. 또한 물은 우리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요소이기도 하다. 인체의 약 70%가 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물은 단일 화합물로서 인체 내에서 함유량이 가장 큰 물질이다. 물은 우리 몸의 피를 구성하는 주요 성분이며 영양소를 세포로 운반한다. 또한 대사 과정에서 생기는 노폐물을 운반하여 배출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요즘처럼 무더운 여름철에는 물이 발한 작용을 도와 우리의 체온을 적절하게 조절해 준다. 우리가 물을 충분히 마셔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물의 윤활 작용 때문이기도 하다. 체내에 수분이 충분해야 소화계나 호흡계의 점막이 부드럽게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다. 우리 몸은 소변이나 호흡 작용을 통해 수분의 손실을 가져오는 한편 무더위로 인해 많은 땀을 배출하면서 체내 수분량이 부족해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갈증을 느꼈을 때만 물을 마실 것이 아니라 수시로 물을 마셔 체내에 충분한 수분을 공급해 주어야 한다. 체내에 물이 부족하면 신체 곳곳에 질병의 조짐이 나타난다. 우선 피부는 탄력을 잃게 되고, 피부의 노화 현상은 빠르게 진행된다. 여름철에 직장이나 가정 등 실내에서 에어컨을 켜고 생활하는 사람들은 체내 수분이 쉽게 말라 안구건조증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 체내에 수분 공급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뇌 기능에도 문제가 발생해 치매에 걸릴 확률도 높아진다는 연구 보고도 있다. 여름은 체내 수분의 손실이 많은 계절이기 때문에 몸속 수분의 평형을 잘 맞추기 위해서는 충분한 양의 물을 마셔야 한다.
조종암에서
물에 뛰어들어 시원한 물을 피부로 느끼며 더위를 이기거나 물을 충분히 마심으로 건강의 유익을 도모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이에 더해서 물은 물이 가진 특성을 통해 사람들에게 <무언의 교훈>을 주기도 한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해서 매년 여름이면 경기도 가평에 있는 <사슴의 동산>이라는 교회 수양관을 찾는다. 그곳은 ‘조종천’이라는 작은 강이 수양관 부지를 감싸며 흐르기 때문에 무더운 여름철이면 그곳에서 자주 독서와 명상으로 시간을 보낸다. 그야말로 피서(避署)를 즐기기에 제격인 곳이다. 강변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면서 여름철 밤하늘의 별을 관측하기도 하고, 열대야를 잠시 잊은 채 시원하고 낭만적인 밤을 보내곤 했다. 어느 해인가는 흐르는 강물 소리를 들으며 스르르 잠이 들었다. 잠결에 돌돌 흐르는 물소리를 빗소리로 착각해 밤새 비가 내린 줄로 알았던 기억도 있다. 얼마 전에 나는 그곳에서 조종천을 따라 차를 운전해 10여 분 거슬러 올라가 경기도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조종암>에 들렀다. 그곳에서는 커다란 바위에 여러 글자를 각석(刻石)해 놓은 것을 볼 수 있었다. 바위 위에 새긴 여러 각석 중에서 조선 시대 선조 임금의 필적으로 알려진 ‘만절필동(萬折必東)’이라는 글자를 보았다.
만절필동(萬折必東)
‘만절필동’은 『순자』의 유좌 편에 실린 공자의 말에서 비롯된 고사성어이다. 동쪽으로 흐르는 황하(黃河)를 바라보며 깊은 사색에 잠긴 공자에게 제자인 자공이 그 까닭을 물었다.
그러자 공자는 물의 9가지 특성을
덕(德), 의(義), 도(道),
용(勇), 법(法), 정(正),
찰(察), 선(善), 지(志)에 비유해 말해 주었다.
“물이란 모든 생물에게 두루 미치면서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것 같으니
마치 덕(德)을 가진 사람과 같다.
물은 언제나 낮은 곳으로 향하니
마치 의(義)로운 사람과 같다.
물은 한없이 콸콸 흘러나오니
마치 도(道)와 같다.
물은 100길이나 되는 계곡으로 떨어져도 두려워하지 않으니
마치 용(勇)기 있는 사람과 같다.
물은 작은 곳이라도 가득 채워서 평평하게 한 후 흘러가니
마치 법(法)도를 지키는 사람과 같다.
물은 어느 곳이든 고르게 하니
마치 공정(正)한 사람과 같다.
물은 진흙에 파고들어 작은 제방에까지 이르니
마치 관찰(察)하는 사람과 같다.
물은 물속을 드나드는 것들을 깨끗하게 하니
마치 선(善)한 사람과 같다.
물은 만 번을 꺾어서라도 반드시 동쪽으로 흘러가니
마치 의지(志)가 굳은 사람과 같다.”라고 설명하면서
군자가 물을 볼 때 반드시 살펴야 할 점이라고 교훈했다.
공자가 물을 자세히 관찰하는 데서 얻은 여러 깨달음을
제자에게 가르친 것이다.
물멍의 이유
만절필동(萬折必東)은 직역하면 “(물은) 만 번을 꺾여도 반드시 동쪽으로 (흐른다).”라는 뜻이다. 이 고사성어는 ‘어떤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결국은 원래 뜻대로 됨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하거나 충신(忠臣)의 절개는 꺾을 수 없음’을 강조할 때 쓰인다. ‘물은 반드시 동쪽으로 흐르게 되어 있다’는 말은 중국의 지형과 관계가 있다. 황하의 강줄기는 굴곡이 매우 심하지만 서고동저(西高東低)인 중국 지형의 특성상 반드시 동쪽으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 이것을 군자의 의지나 충신의 절개로 풀이한 것이다(출처: 『한자 인문학』, 북스톤). 우리도 무더운 여름이 되면 강이나 바다 혹은 작은 호숫가에서 물을 보며 깊이 생각하고 깨달음을 얻으면 좋을 일이다. 이 삼복염천(三伏炎天)에 물가에 앉아 소위 <물멍>을 즐기며 마음을 씻고 또한 마음의 진정한 휴식과 힐링을 맛봐야 하지 않겠는가?
- 박재만 시조사 편집국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