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넓은 세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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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를 어디에 쏟을 것인가?
세상에는 인생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세상에는 삶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매우 근시안적인 안목으로 세상을 보니, 더 넓은 세상을 보지 못하고 현재 직면한 문제에 함몰되어 자신의 분노를 엉뚱한 곳에 분출하거나 제어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예전에는 금전 관계나 원한에서 비롯된 범죄가 많았지만 최근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범죄는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무차별 폭행이나 흉기 난동, 묻지 마 범죄 등이다. 경기도 분당 서현역 인근에 있는 쇼핑몰 앞에서 한 청년이 자동차를 탄 채 행인에게 고의로 돌진해 2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어 범인은 쇼핑몰 안으로 난입해 수십 명의 무고한 시민에게 끔찍한 흉기 난동을 일으켰다. 서울 신림역 인근의 한 번화가에서 길을 가던 평범한 청년은 생면부지의 범인이 저지른 흉기 난동으로 인해 고귀한 목숨을 잃었다. 또한 누구라도 평소에 산책할 법한 등산로에서 대낮에 벌어진 끔찍한 살인 사건 등으로 인해 국민들은 깊은 충격과 불안감에 휩싸였다. 이런 범죄를 저지른 범인들은 마치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이들은 잔혹하고 폭력적인 성향의 게임 속 인물처럼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 또한 이들은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이런 잔인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범죄를 인지하지 못하고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이코패스의 전형적인 기질을 가졌다. 2022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 사회에 이런 성향을 가진 <은둔형 외톨이>가 약 50만 명이라고 추정했다. 우리 사회가 경제 발전으로 인해 물질적인 양극화가 심화되었고 이에 따라 심리적인 열등감, 무기력으로 인해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청년들이 많아졌다. 반면에 SNS를 통해 접하는 사회의 모습은 많은 사람이 자신의 가장 좋은 모습을 게시하니까 다들 성공했고, 다들 경제적으로 부유해졌는데 ‘나는 뭐냐?’라는 생각에 스스로를 실패자로 낙인찍는 이들이 많아졌다. 삶에 대한 회의감, 상실감을 크게 느껴 불특정 다수에 대한 혐오 범죄도 증가했다. 자신의 분노를 조절하는 데 실패하고 열등감에 사로잡혀 은둔 생활을 하며 패배 의식과 절망감에 빠진 이들이 모두 잠재적 범죄자라고 볼 수는 없지만 이들 중 극소수의 돌발 행동으로 인해 사회적 범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들이 자신의 에너지를 새로운 경험이나 모험, 여행 등을 통해 자신의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자신의 에너지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분출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는 지금보다 더 안정적이고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더 넓은 세상에서
지난 8월, 내 생애 처음으로 몽골을 여행했다. 낯선 나라에서 경험하는 생경한 풍경은 기대와 흥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여행을 떠나 보니 오감이 열렸다. 새로움을 경험하는 일은 언제나 마음이 설렌다. 말로만 듣던 몽골 초원에서의 말타기, 독수리 조련사의 안내로 팔꿈치까지 오는 두꺼운 가죽 장갑을 끼고서 나의 손등 위에서 커다란 독수리가 날갯짓하며 독수리 춤을 추는 모습을 보는 것은 무섭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초록 융단을 깔아 놓은 듯한 드넓은 초원,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두둥실 떠가는 새하얀 구름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을 주었다. 조금 불편했지만 푸른 초원을 배경으로 지어진 하얀 게르(몽골식 전통 텐트)에서 마치 유목민이 된 것처럼 편안한 잠을 청하기도 했다. 잠이 들 무렵, 후드득후드득 떨어지는 빗소리에 금세 몇 편의 시를 써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시심(詩心)이 가슴속에 일렁였다. 서울은 연일 섭씨 30도에 이르는 열대야가 한창이라 들었는데 한기가 들어 새벽녘에 문득 잠이 깨었다. 비는 그쳤고, 바깥 기온은 한여름이었지만 제법 차가웠다. 게르를 나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수천, 수만 개의 별들이 밤하늘을 검은 융단 삼아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새벽 공기가 제법 쌀쌀했지만 소위 <별멍>에 빠져들어 나도 모르게 탄성만 내지를 뿐이었다. 자동차로 거친 오프로드를 달리며 수천, 수만 마리의 오축(五畜: 말, 소, 양, 염소, 낙타)이 초원 위에서 풀을 뜯는 모습은 늘상 접하던 대도시의 모습과 큰 대조를 이루었다. 때로는 10시간 넘게 비포장도로를 달렸고,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을 달리는 듯했다. 모든 것이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내 입에서 불평의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말이 비포장도로지 넓디넓은 초원에 난 수십 갈래의 흙길, 초원길, 돌길을 번갈아 달리는 매우 생소한 경험을 했다. 고비(Gobi) 사막에는 가지 못했지만 어쩌다 ‘미니 고비’라는 별명을 가진 작은 모래 언덕을 만났다. 한겨울에 눈 위에서 타는 플라스틱 눈썰매판을 들고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 언덕 위에 올라 신나게 모래 언덕을 내려오는 <모래 썰매>도 즐겼다. 『월든: WALDEN』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말처럼 “모든 새로운 경험은 우리를 변화시킨다.”라고 했듯이 여행을 통해 경험한 낯선 곳에서의 새로운 경험은 내 생각과 마음 그리고 태도를 변화시키기에 충분했다. 눈으로 처음 보는 전경을 접하고, 입을 통해 몽골의 전통 음식을 맛보고, 낯선 곳에서 현지인을 만나 그저 눈빛으로 미소로 인사를 나누었을 뿐인데 그간 얽매였던 모든 스트레스에서 놓여 진정한 힐링을 경험했다. 여행은 기대와 흥분 그리고 설렘이 가득한 일이다. “여행하고 싶어 하는 충동은 희망적인 증상 중 하나이다(The impulse to travel is one of the hopeful symptoms of life.).”라는 말이 있다.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이 모니터나 스크린에서 시선을 옮겨 더 넓은 세상을 향했으면 좋겠다. 또한 누군가 “새로움에 대한 도전은 희망이 있다는 뜻이다.”라는 말을 했다.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새로움에 대한 도전을 주저하지 말고 더 넓은 세상을 향해 희망찬 발걸음을 힘차게 내딛길 바란다.
난관의 극복
물론 여행하는 동안 항상 즐거운 일만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이번 여행을 하다가 자동차로 거센 물살을 가로질러 자동차 바퀴만큼 차오른 개울물을 건너야 했다. 힘겹게 개울을 건넌 후, 한참을 달리다 잠시 자동차를 멈추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함께 동행한 사람이 “어? 이 차는 앞번호판이 없네?” 그러자 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자동차를 운전하던 친구가 나를 차에 태운 채 황급히 아까 건넜던 개울을 향해 달렸다. 그는 운전을 하면서 “아까 개울을 건널 때 앞번호판이 거센 물살 때문에 떠내려간 것 같다.”고 말했다. 개울가에 차를 세워 놓고 신발과 양말을 벗었다. 두어 걸음 걸어서 들어갔는데 너무 발이 시려워서 도로 물가로 뛰쳐나왔다. 물가에 서서 눈으로만 훑으며 잃어버린 번호판을 찾았다. 하지만 자기 자동차의 번호판을 잃어버린 이 친구는 차가운 물로 인해 발이 시렸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기저기 물속을 걸었다. 한참 후에 저만치서 양손으로 차량번호판을 번쩍 치켜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차량의 번호판이었다. 잠시 후에 연속해서 차량번호판을 번쩍 치켜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다른 차량의 번호판이었다. 무려 4개의 번호판을 더 찾았으나 정작 자신의 번호판을 찾지 못하자 그는 매우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물이 너무 차가워서 도무지 견딜 수 없게 되자, 도로 물가로 나오다 물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이번에도 역시 나를 향해 차량번호판을 번쩍 치켜들었다. 마침내 자기 차량번호판을 찾은 것이다. 그가 환한 표정을 지으며 물가로 나왔다. 갈 길이 먼데 길에서 많은 시간을 허비했고, 번호판을 찾느라 두 발이 얼얼할 정도로 차가웠지만 우리는 예상치 못한 난관을 극복해 냈다. 우리는 다시 여행길을 재촉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돌이켜보니 조바심 냈던 개울가에서 우리는 잃어버렸던 소중한 것을 도로 찾으며 예기치 못한 추억을 쌓았고 거기서 <또 다른 작은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최근 한 서점에 들렀다가 『오늘의 불행은 내일의 농담거리』라는 제목의 책을 서가에서 보았다. 나름 고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터라 그 서가 앞에 발걸음을 멈춰 서서 책 제목에 공감하며 혼자 속으로 피식하고 웃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마음이 병든 사람들이 참 많이 있다. 자신의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사회적인 약자를 향해 분노를 표출하는 범죄도 그만큼 많아졌다. 컴퓨터 모니터에서 보이는 가상 세계나 스마트폰 화면에서 보이는 과장된 모습에 현혹되지 말자. 골방에서 나와 더 넓은 세상을 향해 가슴을 펴고, 더 높은 하늘을 쳐다보고, 폐 속 깊숙이 신선한 공기가 전달되도록 깊은 호흡을 해 보자. 마음속에 자리한 우울감을 떨쳐 버리고 더 넓은 세상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자. 굳이 해외여행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골방을 벗어나고 스크린을 벗어나 맑은 공기를 호흡할 수 있는 곳이라면 일단 어디든 떠나 보라. “여행과 새로운 장소는 마음에 새로운 활력을 부여한다(Travel and change of place impart new vigor to the mind.).” 세상은 아직 우리가 보지 못한 것들로 가득하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세상, 내가 아는 세상이 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다.
- 박재만 시조사 편집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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