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 암스트롱은 왜 아이슬란드 화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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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얼음의 땅 아이슬란드, 생각만 해도 머리가 차가워지고 환상적인 오로라의 떨림이 연상된다. 지리적으로 북아메리카판과 유라시아판의 경계에 위치해 100여 개의 활화산이 존재하며 연중 충청북도 면적의 육지 빙하가 존재해 사계절 이색적인 풍경을 보여 준다.
아이슬란드의 이색적인 풍경은 인류 최초로 달 탐험에 나섰던 우주 비행사들에게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인류가 달에 첫발을 내딛기 몇 년 전 아폴로 계획에 참여했던 닐 암스트롱을 포함해 서른 명의 우주 비행사가 아이슬란드로 탐험을 떠났다. 그들은 황량한 아이슬란드로 왜 탐험을 떠났을까? 이런 호기심에 이끌려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 아이슬란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아폴로 계획
1967년 아폴로 계획을 시작으로 미국과 구소련(이하 러시아)의 달 탐사 경쟁이 본격화된다. 이미 최초 우주 비행과 우주 유영에 성공한 러시아에 비해 모든 면에서 뒤처진 미국은 좀 더 원대한 계획이 필요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1970년 안에 달에 사람을 보낸다.”라는 라이스 대학 연설을 통해 역사상 최대 규모의 우주 탐사 프로젝트를 가동시킨다. 그러나 야심 차게 시작된 아폴로 계획은 초반부터 진통을 겪는다.
아폴로 1호 지상 훈련 중 우주선 내부 화재로 인해 유능한 우주 비행사 세 명을 잃었다. 미국항공우주국(이하 NASA)은 아폴로 1호의 문제를 규명하기 위해 2, 3, 4호는 우주 비행사를 배제하고 로켓 실험만 진행하였다. 이 기간 동안 NASA는 우주 비행사들이 달에 착륙했을 때를 대비한 실전 훈련에 집중했다. 최초로 달에 가는 만큼 중요한 과학적 임무가 주어졌다. 바로 달의 암석과 토양 표본을 수집해 지구로 돌아오는 일이었다. 암석과 토양 표본은 달의 형성 기원 및 태양계 초기 환경을 이해하는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지질학 교육
하지만 당시 우주 비행사들은 대부분 공군 전투기 조종사다 보니 지질학 지식이 전무했다. 어렵게 달에 도착해 양질의 표본을 수집하지 못하면 과학 임무 수행에 차질이 생길 게 뻔했다. 급기야 NASA는 우주 비행사들에게 지질학 교육을 진행했지만 문제가 있었다. 우주 비행사들에게 이론 수업은 지루하기만 했고 이해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결국 닐 암스트롱(훗날 아폴로 11호 선장)이 교관에게 의견을 전달했다. 지루한 이론 수업보다 현장에서 직접 지형과 암석을 보면서 수업을 하는 게 적합할 것 같다고 말이다.
아스크야 화산
NASA는 미국지질조사국에 연락해 지구에서 달과 지질학적 구조가 가장 유사한 곳으로 아이슬란드 내륙의 아스크야(Askja) 화산 일대를 추천받고 본격적인 야외 조사 훈련을 준비했다. 수많은 인력과 장비를 싣고 이동하기 위해 미 해군의 협조를 받아 아이슬란드 최북단에 위치한 후사비크(Husavik)라는 작은 어촌 마을에 도착해 베이스캠프를 구축했다. 아스크야 화산은 그들이 도착하기 4년 전인 1961년에 대규모 화산 분출을 해서 달의 화산 지형과 유사한 모습이었다. 1965년 1차로 진행된 야외 조사 훈련은 성공적이었고 2년 뒤인 1967년에 2차 야외 조사 훈련을 통해 달로 가기 위한 최종 리허설을 마친다. 당시 이 소식은 아이슬란드 언론을 통해 대서특필됐지만 60년이 지난 지금은 아폴로 우주 비행사들이 아이슬란드 작은 어촌 마을 근처에서 달 탐험을 위한 마지막 리허설을 했다는 사실이 모두의 기억에서 잊혀지고 말았다.
훈련을 재현하는 탐험
하지만 2013년 후사비크 출신의 한 청년 덕분에 놀라운 이야기가 다시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후사비크 출신인 외를리구르 흐네필 외를리그손(Orlygur Hnefill Orlygsson)은 우연히 도서관 자료를 찾던 중 60년 전 자신이 태어난 고향에 아폴로 우주 비행사들이 왔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아이슬란드가 아폴로 계획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에 영감을 받은 그는 우주 비행사들의 훈련 기록을 수집했고 급기야 당시 훈련에 참여했던 생존 우주 비행사들을 직접 찾아가기에 이른다. 그의 노력 덕분에 2015년, 이제는 구십 살을 넘긴 아폴로 우주 비행사들을 아이슬란드로 초대해 당시 야외 조사 훈련을 재현하는 행사를 진행했다. 이 행사에 아폴로 16호 찰리 듀크, 아폴로 17호 해리슨 슈미트, 유진 서넌이 기쁜 마음으로 참여했고 당시 야외 조사 훈련을 주도했던 고인이 된 닐 암스트롱을 대신해 그의 아들 릭 암스트롱이 한걸음에 달려왔다. 이 소식은 BBC를 포함한 세계 주요 언론을 통해 배포되었으며 인류 최초의 우주 탐험에 나섰던 프런티어들의 탐험 정신이 다시금 재조명을 받았다.
우주 탐험을 위한 플랫폼
아이슬란드는 이를 계기로 국가 차원의 새로운 미래를 준비 중이다. 오래전 우주 비행사들이 달에 가기 위한 리허설을 했던 곳인 만큼 달, 화성의 풍경과 비슷한 아이슬란드를 미래 우주 탐험을 위한 우주선, 로봇, 우주복 리허설의 플랫폼으로 제공하겠다는 전략이다. 지금도 아이슬란드 오지에서는 다양한 우주 탐사 장비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역사는 미래를 보는 창이라고 했던가. 60년 전 달에 가겠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 무모한 도전을 위해 화산 지형을 탐험했던 우주 비행사들의 행보를 주목했던 사람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 작은 발걸음이 마침내 인류 달 탐험을 이뤄 냈고, 그 기억을 통해 새로운 미래가 그려지고 있다.
탐험의 역사
인간의 역사는 탐험의 역사라고 한다. 인류는 더 나은 서식지를 찾아 탐험에 나섰고 대항해 시대를 이끈 마젤란은 해양 탐험을 통해 신대륙을 발견했다. 이제는 지구 경계를 넘어 이웃 행성까지 탐험의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시대마다 탐험의 목적과 의미는 달랐지만 여전히 인류는 끊임없이 탐험에 매진한다. 탐험은 인류의 본질적인 특성이 아닐까. 늘 그랬듯이 우리는 탐험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배우고 더 나은 삶을 추구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만들어 갈 것이다.
- 문경수 과학탐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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