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였음 좋았을 재난의 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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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지진이 휩쓸고 간 뒤 석 달 하고도 보름이 지났습니다. 전 세계가 놀람과 슬픔으로 떠들썩하던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은 대부분 일상으로 돌아온 것 같습니다. 지진 지역의 사람들은 여전히 텐트에 살고 있지만 힘든 나날도 그냥 적응해 가고 있는 듯합니다. 물론 지진의 트라우마 때문에 여전히 집에 들어가기도 힘들어하고 눈앞에서 죽어간 가족들이 불현듯 떠올라 슬픔에 젖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겠지요.
그동안 아드라코리아, 미주 한인교회 및 한국 교회의 교우들, 그 외 세계 재림교회에서 보내 주신 많은 후원금으로 이재민에게 필요한 물품들을 아낌없이 구매할 수 있게 되었고, 한국과 루마니아에서 찾아온 여러 팀의 자원봉사자들을 통해 힘껏 그들을 돕는다고 도왔지만, 이재민들의 필요는 끝이 없습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기쁘게 봉사하는 분들
저는 최근 한국에서 온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11일간 하타이(튀르키예 지진으로 가장 많이 피해를 본 곳)에 머물면서 같이 봉사했습니다. 물론 이전에도 계속 사역을 해 왔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본연의 사역만으로도 바쁘기에 지금까지는 새로운 팀이 올 때마다 그분들을 돕고 협력하기 위해 2주에 약 2~3일씩 봉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11일간의 봉사를 통해 자원봉사자들의 노고를 더 잘 알 수 있었고 그분들이 얼마나 어려운 환경 가운데 기쁘게 봉사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온종일 텐트 안에서
현재 지진 현장은 처음만큼 참혹하지는 않습니다. 매일 철거 작업이 진행되면서 가장 처참하게 무너진 건물부터 정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게들도 하나둘씩 문을 열어서 기본적인 물건은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때부터 시작된 실업의 영향으로 돈을 만지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더욱이 가장 추울 때 지진이 발생해 추위에 떨던 이재민들은 계절이 바뀌면서 낮에는 텐트에 들어갈 수 없어 바깥에서 지냅니다. 정신없이 나온 터라 여름에 입을 옷도 없는 게 그들의 현실입니다. 무너진 학교들은 여전히 문을 열지 못하여 아이들은 텐트에서 종일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트라우마 극복 프로그램과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생각해 봅니다.
우리의 봉사 양상도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응급 대응으로 진행하던 음식물 제공보다는 생필품과 티셔츠, 신발, 선풍기 등을 나눠 주고 있습니다. 지진 발생 넉 달째가 다 되어 가는데도 아직 텐트도 없어 담벼락이나 차에서 잠을 자는 가정이 많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이야기를 듣다가
어느 여자분이 음식은 필요 없다고 해서 생필품 가방 두 개를 줬더니 너무 좋아서 보고 또 보았다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이 가정은 암 환자인 노모와 당뇨를 앓는 13살 딸아이의 주삿바늘을 차게 보관할 아이스박스를 사달라고 요청한 집인데 아이스박스를 사다 준 뒤로 꾸준히 방문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김밥도 준비해서 그 집에서 만든 튀르키예 전통 음식과 함께 먹으며 즐겁게 대화를 나눴고 마지막엔 차를 함께 마시면서 코로나와 지진으로 오랫동안 실업 상태라는 이야기도 꺼냈습니다.
재난을 이용한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최소한 종교색을 감추고 접근했기에 지금까지 늘 친교만 나누고 기도는 마음속으로만 하고 떠났는데 이야기를 듣는 동안 ‘기도하라.’는 강력한 성령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기도해도 되겠냐고 물어본 뒤 기도를 시작했는데 딸아이를 위해 기도할 때 아이의 엄마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기도 중 울어서 미안하다.’ ‘기도해 주어서 고맙다.’ ‘봉사자들 모두의 방문에 너무 감사하다.’라는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하타이 사람들은 참 따뜻합니다. 우리가 방문하는 가정마다 예외 없이 모두가 ‘집(텐트)에 들어와 차 한잔하고 가라.’고 권합니다. 그들이 주는 차를 마시면서 대화하다 보면 금세 친구가 됩니다.
재난으로 가족과 재산을 잃고 어려운 상황에 있지만 이 재난을 하나님께서 희락으로 바꿔 주시면 좋겠습니다. 추수 때가 가까워 보이는 이곳에 커뮤니티센터를 설립하여 주민들과 더 자주, 더 오래 만날 기회가 생기길 꿈꿔 봅니다.
- 김윤주 서아시아필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