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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현 박사는 “치료를 위해 진통제와 수술이 필요하듯 심리적 문제 접근도 마찬가지”라며

“어떤 경우는 공감과 지지의 진통제가, 어떤 경우에는 직면이라는 수술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2022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1년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4명 중 1명은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더욱이 10만 명당 자살률이 24.6명으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2년 넘게 지속된 코로나19 팬데믹은 국민 정신건강을 악화시켰고, 할로윈데이를 즐기려던 청년들이 허망하게 목숨을 잃은 ‘10·29 참사 사건’까지 겹치면서 온 사회가 집단적 충격과 슬픔에 빠지기도 했다. 비극이 일어난 지 벌써 수 개월이 지났건만 아직도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적잖다. 여기에 서로 다른 이해와 해석이 더해지며 사회적 갈등의 골까지 깊어지는 모습이다.

심리학박사 조이현 소장(광주 더마음연구소)은 “이럴 때일수록 섣부른 치유보다는 2차 충격의 예방에 집중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조언한다. 그는 “치유라는 단어부터 내려놓아야 한다.”면서 “유가족 입장에서는 충격의 깊이가 매우 깊어서 치유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에 자칫 반감이 들 수 있다.”고 진단했다. 조이현 박사는 “치료를 위해 진통제와 수술이 필요하듯 심리적 문제 접근도 마찬가지”라며 “어떤 경우는 공감과 지지의 진통제가, 어떤 경우에는 직면이라는 수술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트라우마를 겪으면 일시적으로 ‘해리 현상’을 경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의식, 기억, 정체감, 환경에 대한 지각 등과 같이 정상적으로 통합돼야 하는 성격 요소가 붕괴되면서 일으키는 현상이다. “현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고,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은 심리 상태에 놓일 수 있습니다. 악몽을 꾸는 것 같은 멍한 경험을 하죠. 이는 외상 후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신체 반응입니다.

그리고 분노가 치밀고 울적해집니다. 이때 위로한다며 답을 주려 하거나 극복 혹은 수용을 강요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우울과 분노의 과정을 부끄럽게 여기고 죄책감을 느껴 그러한 과정을 회피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우울과 분노가 오랜 시간 지속되고 말죠.”

그렇다면 집단적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과 실천이 필요할까?

 

조 박사는 “치료의 시작은 문제를 인정하는 데있다.”고 전제하고 “트라우마 치유를 위해서는 ‘수술의 과정’인 직면이 있어야 한다. 단 직면할 때 조심하지 않으면 재외상을 입게 되어 상황이 더 악화할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과거 광주 트라우마센터 치유 팀장으로 근무할 때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중심에 섰던 이들에게서 트라우마 후유 증세가 드러났다. 많은 사람이 가족 관계가 깨지고 대인기피증에 시달리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가정을 잘 유지하는 경우가 발견됐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을 분석했더니 가족 특히 배우자의 긍정 역할이 매우 컸다는 공통점을 찾아냈다. 예컨대 아빠가 트라우마 후유증으로 별것 아닌 일에도 예민하게 행동하면 엄마는 아이들에게 “아빠는 원래 그렇지 않았어.”라고 다독였다. 신경질적 반응에 당장은 화가 나더라도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아빠가 충격으로 아파서 그러는 거”라고 슬기롭게 대처했다. 이에 아이들은 아빠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확연히 줄었고 나아가 불쌍히 여기는 마음도 갖게 됐다. 그만큼 주변 사람들의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트라우마의 특징을 이해하고, 외상을 입은 사람의 예민성에 대한 인내와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일관성 있게 가져야 한다는 교훈이다.

그러고 보니 ‘10·29 참사’ 희생자의 대부분이 과거 세월호 사건을 겪은 10~20대여서 더욱 걱정이었다. 조 원장에게 우리 사회가 이 세대를 돕고 보듬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다. “외상 사건의 특징은 주변과의 관계에 어려움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주지하다시피 인간관계의 기본은 서로의 신뢰를 바탕으로 이뤄집니다. 그런데 신뢰가 흔들리다 보니 관계를 지속하는 데 어려움이 발생합니다. 외상을 겪은 젊은이들은 관계를 맺거나 유지하는 데 더 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는 관계에서 입은 상처는 관계를 통해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깊은 충격에 혼자있고 싶어 하거나 의도적으로 만남을 거부하더라도 찾아가고 또 찾아가서 함께 있어 줘야 한다고 조언다. 충분한 애도 기간을 갖도록 배려하고, 그러한 시간에 곁을 지켜 줘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2차 충격을 조심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감정은 몸에 있다. 트라우마 외상은 몸에 남는다. 기억은 희미해져도 몸이 충격을 기억하게 된다. 말로 위로하기 전에 신체적 위로가 우선”이라며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깊은 잠을 자게 하고, 음식을 대접하고, 어루만져 줘야 한다.”고 성경에 등장하는 엘리야의 극복 방법을 소개했다. 

상처를 극복하는 데 종교 생활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했을 정도로 독실한 크리스천인 그는 자신의 책상에서 조용히 성경을 폈다.

“빌립보서 2장 12절에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두렵고 떨리는 경험을 감당 못하면 트라우마가 지속되어 관계에 퇴행이 일어납니다. 인간관계의 폭이 좁아지거나 관계 유지에 어려움이 생기죠. 하지만 두렵고 떨리는 경험을 잘 감당(수용)하게 되면 새로운 사람이 되는 데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너무도 마음이 아프지만 인간에게 두렵고 떨리는 경험을 허락하십니다. 그 경험이 영혼에 끼치는 영향력은 막강합니다. 이러한 경험을 예수님도 하셨고 다윗도 했습니다.”그의 말이 마치 지금도 어딘가에서 슬럼프로 고민하며 인생의 ‘터널’을 지나고 있을 누군가에게 보내는 위로와 용기의 메시지처럼 다가왔다. 오늘도 모든 이의 평화를 기원하는 그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한편 ‘더마음연구소’에서는 3차원 성격 검사와 3차원 집단상담 등 심리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집단상담은 충격적 사건 사고 그리고 질병으로 두려움과 떨림을 경험하거나 목격한 사람을 대상으로 진행한다. 자기 이해와 마음 챙김, 감정 마주하기 등의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