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간의 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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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간이 좋아
지난해 연말, 조카가 <월드 비전>이라는 구호 단체가 운영하는 합창단의 일원이어서 친지들을 초대해 서울 잠실에 있는 롯데 콘서트홀에서 열린 공연을 관람했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조금 잦아들어 3년여 만에 찾은 현장 공연이었다.
유명 가수가 이 단체의 홍보대사여서 사회를 보고 2시간 넘게 진행된 정성 들인 공연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여러 순서자가 무대에 오르내리는 막간을 이용해 조금 전 공연에 대해 얘기도 나누고, 준비해 간 물도 마셨으며, 1부와 2부를 잇는 긴 막간을 이용해서는 화장실에도 다녀와 편안하게 관람을 즐겼다. 막간은 무대에 오르는 사람에게나 객석에 앉은 관객 모두에게 숨을 고르는 시간이며 잠깐 동안 즐기는 휴식 시간인 막간은 꿀맛과도 같다. 막간의 사전적인 정의는 “어떤 일의 한 단락이 끝나고 다음 단락이 시작될 동안”이다. 우리는 우리네 일상에서 수많은 막간을 경험하고 막간의 유익을 누린다. 문자 그대로 막간은 연극에서 막이 끝나고 다음 막이 시작될 때까지의 잠깐의 시간을 말한다. 권투 선수에게는 1라운드 3분 동안 치열하게 상대 선수와 주먹을 주고받다가 주어지는 쉬는 시간 1분이 막간이다. 야구 경기에서는 매회 초와 매회 말에 공격과수비를 번갈아 교대하는 시간이 막간이다. 축구 경기로 말하자면 전반전과 후반전 사이에 주어지는 15분간의 휴식 시간이 막간이다. 수업 시에는 50분 강의에 이어 10분간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 막간이다.
만일 막간이 없다면 체력이 금세 바닥나 경기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관중의 흥미도 쉽게 수그러들고 말 것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는 시간 없이 수업이 진행된다면 가르치는 선생님이나 배우는 학생 모두 지쳐 학업의 능률이 떨어지고 말 것이다. 막간은 비록 매우 짧게 주어진다 하더라도 휴식의 시간이며 재충전의 시간이다.
막간 없는 몰입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데 있어서 몰입은 매우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막간이 없는 몰입은 매우 위험하다. 빡빡한 하루의 일과 속에서 잠시 호흡을 고를 막간이 없다면 그 하루가 얼마나 고될까?
오늘날 정말 많은 사람이 잠시도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그래서 그나마 우리가 잠시 누릴 수 있었던 막간의 시간을 빼앗겨 버려 시간에 쫓기며 피곤하고 고된 나날을 보낸다. 사람들은 아침에 스마트폰 알람 소리에 잠을 깬다. 겨우 눈을 뜨면 간밤에 들어온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고 허둥지둥 한 손에 스마트폰을 움켜쥐고서 지하철이나 자동차에 오른다. 뉴스를 읽고 유튜브 동영상을 보며 쉼 없이 인터넷 정보의 바다를 떠다닌다. 점심 식사 시간이 되어 식당에 가면 한 손에는 숟가락을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스마트폰을 조작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심지어 화장실을 갈 때도 빈손으로 가지 않는다. 잠깐이라도 짬이 나면 연신 스마트폰을 열어 문자를 주고받다가 또 다른 뉴스나 이슈를 찾아 헤맨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면서도 음악을 틀어 놓고, 잠자리에 누워서도 쇼핑할 물건을 두루 검색하느라 바쁘다. 하루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거나 마음의 양식을 얻기 위해 책을 읽는 대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컴퓨터 게임, 모바일 게임에 빠져든다. 그러다 흥미를 끄는 동영상이나 게시물을 보다 스르르 잠든다. 이와 같은 디지털 라이프가 온통 우리의 시간을 빼앗아 버렸고 우리네 삶을 차지해 버렸다.
분명 디지털 라이프가 주는 유익이 있긴 하지만 디지털 라이프도 막간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이 디지털 라이프에 몰두하여 빠져들고 거기에 함몰되어 가고 있고, 막간의 가치와 효용성을 이해하지 못해 이를 누리지 못하는 이들이 너무 많아졌다.
디지털 메뚜기
이탈리아 출신의 언론인 리사 이오띠(Lisa Iotti)는 그의 책 『산만함의 시대, 8초 인류』에서 현대의 인류가 어떤 사안에 대해 8초 이상 집중하지 못한다고 썼다. 2000년에는 12초였는데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고 나서는 8초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신인류는 ‘8초 메뚜기’라고 부를 만하다. 그녀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각종 소셜미디어를 서핑 하는 이들이 겪고 있는 다양한 폐해를 지적했다. 오늘날 정말 많은 사람이 막간을 즐기는 여유 없이 디지털 세계가 제공하는 정보의 바다에서 이리저리 표류하며 자기의 정체성을 잃어 가고 있다. 막간이 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삶의 본질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각종 문자 메시지와 알림으로 인해 끊임없이 주의력이 산만해져 가고 있다. 스마트폰과 더 많이 친숙한 사람일수록 기억력과 인지능력이 쇠퇴해진다는 연구 결과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궁금한 문제나 용어가 있으면 더 깊이 생각해 보던 과거와는 달리 언제라도 궁금증을 즉시 해결해 주는 자료가 손안에 있으니 디지털 세계에 더 의존적이 되어 가고 있다. 어딘가를 찾아갈 때 새로운 길을 발견하고 기억을 더듬어 알아내려던 행위가 이제는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는 형국이 되어 버렸다. 부자들의 소비 성향을 연구해 기업에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 업체인 ‘럭셔리 인스티튜트(Luxury Institute)’의 CEO 밀턴 페드란차(Milton Pedraza)는 “새로운 부의 상징은 소셜미디어를 버리고, 이메일에 곧바로 답장하지 않고, 최신 아이폰 모델로 무장하지 않는 것으로 바뀌었다.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보다 탄산음료를 덜 마시고 담배를 안 피우는 것처럼 디지털 기기를 가지고 각종 플랫폼을 활용해 디지털 세계에 머물러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이제는 ‘낙오자’의 일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어떻게 하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디지털 라이프를 벗어나 막간의 시간을 늘릴 수 있으며 막간의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스마트폰을 비롯해 모든 디지털 기기와 <잠깐의 단절을 실천하는 일>은 다소 유익하다. 2023년 새해를 맞아 우리는 해로운 정보들에 대한 단절(disconnect), 불필요한 관계들에 대한 단절(disconnect)을 통해 보다 생각의 여유를 누릴 수 있고 마음에 평화를 되찾을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막간이 실종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지친 우리네 삶에 쉼을 주고, 우리 삶을 재충전해 주는 막간을 되찾도록 하자. 막간을 도로 찾는 매우 획기적이고 창의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는 명상과 기도이다. 조용히 눈을 감고 잠시 호흡을 멈추고 생각을 정리하는 기도야말로 우리의 몸과 마음에 건강을 가져다준다. 잠시 호흡을 멈추고 디지털 기기로부터 단절한 후 눈을 감고 잠시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