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켜설 줄 아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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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막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바쁘게 살고 있다. 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하고 싶은 일들도 너무나 많다. 어린아이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바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AI 로봇 등 수많은 문명의 이기들이 우리네 삶을 윤택하게 해 주었고, 업무 능률을 올려 주었으며, 업무 시간을 크게 단축시켜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바쁘고 오히려 시간이 모자란다. 게다가 이처럼 바쁜 세상에서 살면서 남들보다 앞서기 위해 치열한 경쟁도 해야 한다. 사람들은 남들보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애쓰며, 남들보다 나은 특권을 누리려 안달한다. 경쟁 사회의 일원으로 살다 보니, 일단 좋은 자리를 선점하면 어떻게 해서든지 꿋꿋하게 버티려고 한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줄임말이 유행하다 보니, 사람들이 종종 “길막”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길막’은 “길을 막다”의 줄임말이다. 어떤 제보자는 “#길막 트럭”이라는 해시태그를 붙여 자신의 자동차 블랙박스에 찍힌 동영상을 SNS에 게시했는데, 영상 속에는 응급 환자를 이송하고 있는 앰뷸런스를 가로막고 길을 터 주지 않는 트럭이 보였다. 또 다른 제보자는 이와 반대로 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들이 앰뷸런스 사이렌 소리를 듣자, 마치 “모세의 기적”을 연출하듯 길 좌우로 비켜 비상 통행길을 터 주어 도로 한가운데가 시원스레 뚫린 영상을 게시하기도 했다. 나 역시 2023년 8월 몽골을 자동차로 여행하는 중에 ‘길막’을 경험한 일이 있다. 여행길 곳곳에 좌우로 푸르른 초원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수천수만 마리의 양과 염소가 풀을 뜯고 있었다. 때로는 수천 마리의 양과 염소가 우리가 달리는 도로를 가로막고 서 있으면, 이 양 떼와 염소 떼가 길을 터 주기까지 하염없이 뙤약볕 아래서 기다려야 했다. 연초에는 부산의 한 아파트에서 입주민이 자신의 자동차에 불법 주차 경고 스티커를 붙였다며, 여러 시간 동안 아파트 정문 출입구에 설치된 차단기를 자신의 자동차로 가로막아 관리실에 항의하느라 다른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는 기사를 본 적도 있다. 가야 할 길이 막히면, 인내하며 기다려야 하기도 하고, 답답하며 불쾌감이 들기도 한다.
길터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지금보다 만원 버스를 탈 일이 참 많았다. 중학교 1, 2학년 때였던 것 같다. 까까머리를 하고 검정 교복을 입고서 교모까지 쓴 채, 책가방을 들고서 만원 버스에 올라 등교하는 일이 키 작은 꼬맹이 중학생에게는 큰 도전이었다. 어떻게 겨우 만원 버스에 오르면, 버스 손잡이는 하늘만큼 높아 잡히지 않았고 숨이 턱턱 막혔다. 고등학교 형, 누나들은 골리앗처럼 키가 컸고, 장신 숲(?)을 헤집으며 이리저리 흔들리는 버스에 몸을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어떤 때는 교복 단추가 떨어져 나가기도 했다. 한 손에는 책가방 손잡이를 꼭 붙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모자가 벗겨질까 봐 꼭 눌러썼다. 한번은 우연히 만원 버스 안에서 누나의 친구를 만난 적이 있는데, 좁은 틈을 비집으며 사투(?)를 벌이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자기 몸을 비틀어 어렵사리 공간을 만들면서 “이리 와서 서!” 그러면 필사적으로 누나 친구의 곁으로 다가가 안전을 확보(?)했던 추억의 편린이 떠오르곤 한다. 힘 있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 이 경쟁 사회에서 먼저 자리를 차지해 버리고, 자리를 비켜 주지 않으면서 꿋꿋하게 버티면 정작 힘없는 약자가 설 수 있는 곳은 찾을 수 없다. “길터”라는 줄임말은 없다. 하지만 너 나 할 것 없이 바쁜 세상, 살벌한 경쟁 사회에서 우리는 ‘길터’, 즉 “길을 터 주는 사람”이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필요한 세상을 살고 있다.
비켜설 줄 아는 사람
길을 터 주는 사람, 남을 위해 비켜설 줄 아는 사람은 자신의 권리나 특권을 내려놓은 사람이다. 비좁은 공간에서 어깨를 내어 주는 사람이며, 다른 사람이 편하게 걸어갈 수 있도록 길을 내어 주는 사람이다. 그는 자기도 시간에 쫓겨 바삐 해야 할 일이 있지만, 다른 사람이 앞서가도록 시간을 내어 주는 사람이며, 양보와 배려가 습관처럼 몸에 밴 사람이다. 자신의 권리만을 주장하며 <길막 하는 사람>이 되기보다 어깨를 반쯤 돌려 <비켜설 줄 아는 사람>이 되자.
<비켜설 줄 아는 사람>이
진정으로 강한 사람이다.
<비켜설 줄 아는 사람>이
진정으로 겸손한 사람이다.
<비켜설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승리자이다.
<비켜설 줄 아는 사람>이
진정으로 남을 존중하는 사람이다.
<비켜설 줄 아는 사람>이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이다.
<비켜설 줄 아는 사람>은
자신의 특권을 내려놓는 사람이다.
<비켜설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이 시대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사람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사도 바울은 일찍이
후대의 사람들을 위해 이런 교훈을 남겼다.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
Rather, in humility
value others above yourselves!
(빌립보서 2장 3절)
- 박재만 시조사 편집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