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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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은 시골에 살면서 자연에서 지내기를 좋아했다. 나와 여동생은 초등학생 때부터 학교에 다니지 않고 집에서 공부하며 농사일을 도왔다.
봄이 되면 시골은 농사 준비로 분주해진다. 아침 햇살에 안개가 모락모락 올라오는 날이면 포근함이 더욱 깊어진다. 특히 거름을 주고 난 밭은 발효가 되느라 안개가 자욱하다.
나는 아버지와 거름을 자주 만들곤 했다. 산에서 낙엽을 모으고 방앗간에서 깻묵을 가져와 적절히 배합한 뒤 삽으로 여러 번 뒤집어 주었다. 냄새가 나고 계속해서 뒤집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어려운 일 중 하나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 과정이 나무와 채소에게 좋은 영양소가 된다고 강조하시고 비료가 아닌 자연식 퇴비를 만드는 것을 자랑스러워하셨다. 그 덕분에 싱싱한 식재료를 얻을 수 있었다는 기억이 있다. 내게도 밑거름처럼 내 마음을 붙드는 소중한 추억이 있다. 어머니는 나와 동생을 데리고 산이나 들로 나가는 것을 좋아하셨다.
겨울이면 소나무 가지마다 소복이 쌓인 눈으로 터널이 만들어졌고, 나와 동생은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추운 줄 모르고 신나게 뛰어다녔다. 어머니는 자신이 어렸을 때 이렇게 놀았다며 지푸라기를 넣은 비료 포대로 썰매를 만들어 주셨다. 나와 동생은 신발에 눈이 들어가도 아랑곳하지 않고 비료 포대가 찢어질 때까지 썰매를 탔다.
어머니는 봄이 오면 산 아래에 있는 갈대와 버드나무가 어우러진 양지바른 곳으로 데려가셨다. 우리는 따뜻한 햇빛을 받으며 풀밭에 앉았다. 어머니는 버드나무 가지를 하나 집어 말씀하셨다. “이 버드나무에 왜 이렇게 털이 많을까?” 어머니는 이내 버드나무가 겨울에 춥지 말라고 하나님이 솜털 같은 옷을 입혀 주셨다고 하셨다. 다섯 살 때 어머니께서 즉석 창작 동화를 들려주시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금요일 해가 질 때면 우리 가족은 일몰을 보며 종종 산책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기억에는 장마가 끝나는 시기였던 것 같다. 해가 산 아래로 내려가기 직전 우리 가족은 잣나무 숲으로 갔다. 축축한 숲이었지만 단란한 우리 네 식구가 함께하는 시간은 특별했다. 그리고 숲 밖을 바라보니 산 위에 무지개가 뭉게구름, 노을과 어우러져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우리 가족은 함성을 지르며 무지개를 보고 있었는데 흐리지만 저 멀리 다른 커다란 무지개가 떠 있는 것도 보았다. 우리 가족은 넋을 잃고 무지개가 흐려질 때까지 한참을 쳐다보았다. 그날 이후로 그렇게도 멋진 무지개를 본 적이 없다.
이런 추억은 시간이 지나도 절대로 잊히지 않는다. 내가 힘들 때, 마음에 쉼이 필요할 때, 이 시간들을 떠올리며 위로를 받고 다시금 행복을 느낀다. 부모님의 희생 없이는 이런 소중한 기억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많은 것이 변했다. 어머니는 오랜 쉼에 들어가셨다. 이제 나와 동생은 30대 초반에 이르렀고 결혼하여 각자의 길을 가고 있으며, 나는 시골에서 부모님의 삶을 이어 가고 있다. 우리는 각자 주어진 삶을 살아야 한다.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올바른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마다 나는 소중한 추억을 다시금 떠올리며 결심한다. 나도 부모님처럼 행복을 주는 밑거름이 되리라.
밑거름은 잎사귀와 나뭇가지가 부서져 썩어 사라진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영양분이 되어 뿌리를 굳게 하고, 튼튼한 가지를 뻗게 하여 바람이나 폭풍을 견뎌 내게 한다.
부모님이 나의 인생에 가장 큰 밑거름이 되어 주셨다. 그분들의 희생이 지금의 나를 살게 해 주었다.
우리는 조건 없는 사랑을 받으며 희망을 가지고 살아간다.
- 김에녹 가정과건강 독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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