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물은 최고의 수준으로 창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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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 바탕에 동그란 녹색 그림의 표지가 에덴동산을 연상케 했다. 읽고 싶었고, 가볍게 한 번 훑어보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는 이미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셨다는 것을 믿고 있는데, 창조론과 진화론에 관한 책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 다 아는 것인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처음에 이웃집 마실 가는 기분으로 시작한 책 읽기는 곧 장비를 갖추고 암벽을 올라야 한다는 느낌으로 변해 갔다. 잠깐 멈춰야 했다. 책에 대한 답사가 필요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유튜브에서 책 이름과 필자 이름을 검색했고 필자의 강의와 설교도 듣게 됐다. 그리고 다시 책을 잡았다. 책장이 넘어갈수록 ‘알던 것이 아닌, 새로운 길들’을 만나게 되었다.
창조와 진화에 대한 부분에서 드는 첫 번째 생각은, ‘창조론은 사람을 존귀하게 한다.’ 사람이 신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반면, 진화론은 사람에게 자존감의 생성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창조론 속에서 사람은 자신의 뿌리를 알고 양육을 받는 소중한 존재이지만, 진화론에서는 방치된, 어쩌다 생겨난 생물체로서의 인간일 뿐이다. 그러므로 진화론은 사람을 외롭게 한다. 일반적으로 고독에 처한 사람은 술이나 마약 등 좋지 못한 생활 습관에 빠지게 되거나 자포자기한 심정이 되기 쉽다. 고립된 존재는 포식자에게 좋은 먹잇감이 된다. 인간의 근본을 누추한 존재로 만드는 이론이 진화론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든다. ‘하나님이 계셔. 그래서 어쩌라고?’의 심리는 진화론을 믿는 사람이 스스로 유기된 외로움에 빠지게 만들고, 사탄은 이들의 영혼을 손쉽게 수확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홍수와 화석 이야기는 익히 알던 내용이라 새로운 것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물이 차오르는 정도로 홍수를 인식했던 나에게 ‘홍수 격변’이라는 단어는 생소하고 유난스럽게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화석의 생성 조건이나 발견 위치, 판구조론 부분을 읽으며 이 단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급격한 매장이 없으면 화석이 생성되지 않는다.”라는 대목을 읽으며, 땅이 뒤집히고 엎어지는 것이 눈앞에 생생하게 재현되는 듯했다. 산에서 발견되는 조개나 물고기 화석도 ‘격변’을 이해하는 도구가 되었다. 무엇보다. 판게아 개념은 매우 흥미로웠다. ‘대륙이 찢어졌다.’는 것은 홍수가 단순히 물의 넘침이 아닌 ‘대격변’이었음을 확인해 주었다. “암석의 고지자기는…마그마(용암)가 식어 단단한 암석으로 형성되면서 암석 내부의 특정한 결정체가 지구의 자기력선에 맞추어 스스로 정렬”한다는 것과 “현재 대륙들의 위치로는 고지자기에서 나타나는 배열을 설명할 수 없다.”라는 것으로 판게아와 대륙 이동설 및 홍수 대격변을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성경적 관점에서 판게아를 이해하면, ‘대륙을 쪼갠 힘의 원천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답이 명확할 테지만 그렇지 못한 진화론의 한계가 안타깝기 그지없다. 사람은 듣고 싶은 것을 듣고, 믿고 싶은 것을 선택한다. 창조론과 진화론이 ‘종교’라는 것을 생각하면 ‘오늘날 너희 섬길 자를 택하라.’는 여호수아의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
빙하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책을 더 읽거나 자료를 찾아 볼 시간적 여유를 갖고 싶다. 현재 단순히 깨달은 것은 홍수 이후에 빙하기가 있었고 빙하의 이동으로 U자 계곡이 생성되었다는 것이다. 빙하의 원인이 대격변과 더불어 발생한 화산 폭발이며, 이에 따라 기후의 변화가 있었고, 이것이 빙하기를 만들었다는 정도만 알고, 더 자세한 것은 학습 과제로 남겨 두기로 했다.
예습 과정을 거쳤기에 부록 부분은 비교적 수월하게 읽었다. 부록 1에서 ‘화석의 외침’이라는 제목을 보고 ‘이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과연 현재의 화석들은 ‘홍수 대격변’을 증언하며 조용히 소리치고 있다. 그 소리를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얻은 유익을 말하자면 첫째, 하나님의 창조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둘째, 그분의 권능과 위대하심을 깨달았다. 셋째, 진화론의 허구에 빠지지 않은 것에 감사했다. 넷째, 성경의 기록들이 미래의 사건을 포함하여 생생하게 느껴진다. 다섯째, 하나님의 창조물로서 고귀한 존재인 자신을 인식하게 된다.
이 책에서 얻은 또 다른 한 가지는 상상력의 무한 증식이다. 과거의 격변을 상상하며 미래의 또 다른 격변들을 기대하게 된다.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그분이 자기 사람들을 불러일으키실 때에 지구의 표피는 의인들을 뱉어내기 위하여 꿈틀거리며 뒤집히지 않겠는가?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내려오실 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감람산은 그 한 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쟁투, 662)라는 것도 격변에 속할 것이다. 그리고 더 큰 격변은, 홍수 때 갈라졌다는 6개 대륙을 다시 붙여 이전의 판게아를 만드는 것이 아닐지 상상해 본다. 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하여 ‘바다가 다시 있지 않다.’고 했다. 요한이 말한 ‘바다가 다시 있지 않다’는 것은, 바다의 존재를 부정하기보다는 어디든지 육지로 이어져 있다고 이해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이것이 재창조된, 바다가 다시 없는, 제2의 판게아가 아닐지 생각해 본다.
책을 읽으며 ‘알던 길’ 속에서 ‘새로운 길’을 만나게 된 것에 감사한다. 이미 창조론자인 독자들도 ‘다 아는 것, 이미 결론 난 것을 뒤적이는 일’이라고 성급한 판단을 내리지 말고 탐독해 본다면 풍요로운 하나님의 세계를 맛보고 믿음의 강화와 사고(思考)의 확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인상 깊은 한 구절을 소개한다면, “모든 생물은 최고의 수준으로 창조되었다.”라는 대목이다. 길 가다가 돌멩이를 주웠는데, 알고 보니 다이아몬드였다.’는 느낌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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