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채식으로 건강을 찾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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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이틀 간격으로 쌀과 보리를 한 되, 두 되씩 사 오던 시절이었다. 주식이 이러했으니 반찬이야 오죽했을까? 어머니께서 어쩌다 한 번 싸 주시던 계란프라이는 친구들의 젓가락 난도질을 피하기 위해 도시락 뚜껑을 여는 순간 번개 같은 손놀림으로 입속에 넣어야 했다. 그런 시절에 뜬금없이 접하게 된 주제가 ‘건강한 음식, 올바른 식사’였다. 당시 토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특이했던 나의 행동을 지금도 추억 속에서 끄집어내는 친구들이 있다.
사정은 이러했다. 음식 솜씨가 좋았던 어머니께서 아침 밥상에 생김치를 만들어 올리셨다. 하지만 나는 자극성 음식을 먹지 않겠다는 이유로 생김치의 양념을 모두 씻어 내었다. 글자 그대로 ‘생’김치를 먹었던 것이다. 그 당시 내가 먹던 음식 대부분은 이런 식이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시절 나의 도시락에는 당근과 오이 같은 생야채가 주를 이뤘다. 이게 특이했는지 친구들은 나의 생식 도시락을 탐내곤 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어느새 나는 빈혈 걸린 말라깽이가 되어 있었다.
여수요양병원 소개
지금 내가 근무하는 곳은 28년의 역사를 가진 여수요양병원이다. 오른편에는 고봉산(364m), 왼편에는 봉화산(372m)이 자리하고 있으며 두 산의 중턱에 위치한 병원은 두 산을 어깨에 두른 듯 앉아 황홀한 다도해를 내려다보고 있다. 병원에서 산책을 하다 보면 일출과 일몰도 직관할 수 있는 무척 아름다운 곳이다. 전국에서 오는 암 환자들이 우리 병원을 찾는 주된 이유는 산과 바다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는 점, 현대 의학과 함께 천연 치료(자연치료)를 체험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다양하고 풍성하게 제공되는 맛있는 채식 요리 때문이라고 한다.
현대 식문화의 문제점
모든 일에는 ‘정도’가 있고 ‘사도’가 있듯이 과일과 채소, 곡류 중심의 채식도 그러하다. 특별히 분주한 현대 사회가 만들어 낸 편리함은 식생활에 다음과 같은 변화를 가져왔다.
첫 번째 현상은 ‘매식 문화’이다. ‘맛있는 음식을 좋은 곳에서 사 먹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매식 문화는 집에서 밥을 짓는 번거로움보다 간편함을 우선시했다.
편리함이 만든 두 번째 현상은 잘 손질된 식재료로 누구나 간단하게 조리할 수 있는 ‘가공된 식품’을 손쉽게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비건 식품도 이에 포함된다. 이러한 가공식품은 우리를 정제된 탄수화물에 쉽게 노출시켰다. 정제된 탄수화물의 대표적인 예로는 빵, 과자, 면, 떡 등 정제된 흰쌀과 밀가루로 만든 음식들이다.
편리함이 만든 세 번째 현상은 ‘맛’이다. 시간과 정성이 담겨야 깊은 맛이 배어난다. 하지만 이를 생략하고 맛을 추구하려면 조미료를 과하게 사용해야만 한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원하는 맛’을 만들어 내려면 반드시 식재료 본래의 성질을 변질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과정을 ‘Maillard Reaction(마이야르 반응)’이라고 한다. 이 과정을 거치면 보기에도 좋고 맛과 향이 깊어진다. 하지만 이 화학 반응 과정은 발암 물질과 신경 독성 물질을 생성시킬 뿐 아니라 열에 민감한 비타민류와 항산화 물질을 파괴시킨다.
마지막으로 편리함이 만든 네 번째 현상은 ‘편리함’ 그 자체이다. 세계 보건 기구에 따르면 비전염성 질병(NCDs) 즉 생활 습관에 의한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가 전체 사망자의 74%를 차지한다고 한다. 부정적인 생활 습관의 최대 장애 요인은 ‘편리함’이다. 편리함 때문에 많은 문제가 발생하는 게 불편한 진실이다.
여수요양병원의 치유 사례
첫 번째 사례: 우리 병원 환자 중 2012년 6월에 갑상선암 수술을 받은 환자(여, 55세)가 있었다. 그녀는 당뇨와 고지혈증, 아토피 증세가 매우 심각했다. 2017년부터는 햇빛 알레르기도 생겼고 2023년에는 유방암에 걸려 수술을 한 상태였다. 일상적인 생활이 어려운데 수면 장애까지 겹치니 얼마나 힘든 나날을 보냈을까? 하지만 우리 병원에 입원한 지 3주가 지나면서 주사제 없이 잠을 잘 수 있게 되었고 피부의 진물도 진정되기 시작했다. 그녀가 말한 성공적인 투병 생활의 제1 요인은 역시 ‘건강한 식사’였다.
두 번째 사례: 어느 날 우리 병원에 입원 중이던 환우(여, 55세) 한 분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이유를 들어 보니 외국에서 근무 중인 아들이 몸에 마비가 와서 움직이지 못한 채로 급히 귀국했으며 큰 병원에서 검사 중이라는 것이다. 어머니의 선택은 아들과 함께 우리 병원에서 투병하는 것이었다. 29세인 아들의 병명은 ‘척수의 상세 불명 질환으로 감각, 운동 장애, 보행 장애를 가진 자가 면역 질환’이었다. 아들은 주로 붉은 고기 중심의 식사를 했고, 하루 평균 9시간 정도를 앉아 있었으며, 매일 소주 2병을 마시고 한 갑 이상의 담배를 피웠다. 수면 생활 또한 매우 불규칙했다.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직장인의 모습이었다.
입원 2개월이 지난 후 아들은 스스로 걷게 되었고 3개월 후에는 달리기까지 가능했다. 그는 매일 과일 한 개와 채소, 통곡류, 콩류, 견과류, 씨앗류를 골고루 섭취했으며 혼자 걷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유산소 운동은 매일 40분, 근력 운동은 일주일에 3~4회씩 실시했다. 취침 시간도 10시로 정해 규칙적인 수면 생활을 유지했다. 생활 습관만 바꿨을 뿐인데 아들은 잃었던 건강을 되찾았고 어머니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돌아왔다.
세 번째 사례: 건강한 식습관의 중요성을 보여 주는 또 다른 사례로 2023년 초에 위암 판정을 받은 후 같은 해 11월에 대장을 모두 제거하는 큰 수술을 받았던 68세 남성 환자가 있다. 추가로 위 절제술을 해야 했으나 수술 중 사망률이 높다는 진단에 따라 수술을 포기하고 우리 병원에 입원한 분이었다. 이분의 경우 과일은 1주에 한 개 먹을까 말까 했고 야채는 김치 정도, 콩류는 매우 가끔씩 섭취했으며 고기, 햄, 소시지는 매일 술안주로, 생선은 주 3회 정도 먹었다. 가공식품을 좋아해 라면과 빵을 즐겨 먹었고 운동량은 하루 2천 보 정도에 그쳤다. 또한 1년에 300일 정도는 소주 2~3병을 마셨고 50년 동안 담배를 피웠다. 수면 역시 매우 불규칙하였다. 그는 지난 30년간 당뇨, 폐 질환, 임파선염, 담도염, 역류성 식도염, 대장 파열, 위염과 같은 복합 질환을 앓고 있었다.
2024년 1월, 우리 병원에 입원한 후 그는 매우 빠르게 적응했다. 채식 요리를 선호하여 입원 이후 지금까지 우리 병원 식사만을 고집하고 있다. 하루에 12,000보 이상을 걷고 있고 취침 시간도 저녁 8시부터 새벽 4시까지 규칙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입원 직후에는 체력 저하와 통증으로 거의 걷지 못했지만 4개월 후의 검진 결과에서는 담도 치료는 종료할 만큼 호전되었고, 폐와 임파선의 혹 크기가 감소하였으며, 위암 수치도 정상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체중은 52kg으로 증가했으며 지난 7월부터는 당뇨약 없이도 아침 공복 혈당이 105 이내로 유지되고 있다.
좋은 채식의 비결
‘좋은 채식’의 비법은 무엇일까? 우리 환자의 상당수는 건강한 채식 요리에 진심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꼭꼭 씹어서 천천히 먹고 부드러운 음식에서 딱딱한 음식 순서로 먹는다. 채식의 핵심은 ‘가공이 최소화된 다양한 종류의 통곡물과 과일, 채소를 골고루 그리고 천천히 먹는 것’이다.
건강한 음식은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다. 여수요양병원에서 제공하는 채식 요리는 암 환자와 다양한 질병을 가진 환자들에게 건강을 되찾게 해 주는 중요한 요소이다. 생활 습관을 바꾸고 건강한 채식을 실천함으로써 많은 환자가 건강을 회복하고 더 나은 삶을 살게 되었다. 이러한 사례들은 비건 식사의 중요성과 그 효과를 잘 보여 주며 건강한 식생활이 얼마나 중요한지 여실히 증명해 준다.
- 표여근 여수요양병원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