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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 '불안이'가 폭주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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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사미디어 등록일 2024.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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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이동건의 웹툰 《유미의 세포들》(2015)은 그 독특한 발상 덕분에 더욱 주목을 끌었다. 《유미의 세포들》은 한 사람의 인격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다양한 세포라고 이야기하며, 그 세포들을 각각 흥미롭게 의인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주인공 유미는 정산 때문에 야근을 하던 중 난관에 부딪힌다. 그때 유미 안의 이성 세포는 “힘내!”라고 외친다. 한편 감성 세포는 눈물을 글썽이며 울컥하면서 대꾸한다. “난 야근하고 싶지 않아! 그저 붉게 물든 석양을 향해 뛰어가고 싶을 뿐이야.” 그러자 난폭 세포는 분노하며 고함을 지른다. “정산 서류고 나발이고 다 태워 버리고 싶다.” 바로 그때 다른 세포들보다 덩치가 확연히 큰 세포가 자못 장엄한 자태를 뽐내며 등장하면서 말한다. “뭐 먹고 싶당.” 다름 아닌 출출 세포다. 

이들 중 무엇이 진짜 유미의 목소리일까? 사실 이 모든 목소리가 유미의 목소리다. 어떤 단일하고 특정한 세포만이 ‘유미’가 아니다. 유미의 정체성은 이 모든 세포의 외침의 총합이다. 유미의 경우가 아주 특별하지만도 않다. 우리는 모두 날마다 매분 매초 유미처럼 크고 작은 내적 혼란이나 갈등을 겪으며 살아간다.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두가 얼마간의 정신적 분열을 겪으며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공교롭게도 《유미의 세포들》이 연재되기 시작한 2015년에 개봉한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은 《유미의 세포들》처럼 한 사람의 인격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내면의 감정을 의인화하여 묘사한다. 주인공 라일리의 내면에 존재하는 ‘감정 컨트롤 본부’에는 ‘기쁨이’, ‘슬픔이’, ‘버럭이’, ‘까칠이’, ‘소심이’라는 다섯 감정이 살고 있는데 라일리의 인격은 이 다섯 감정의 상호 작용으로 이루어진다. 

2024년에 《인사이드 아웃》 속편이 돌아왔다. 전반적인 컨셉은 1편과 다르지 않지만 2편에서는 13살이 된 라일리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캐릭터들이 ‘감정 컨트롤 본부’에 합류한다. 바로 ‘불안이’, ‘당황이’ ‘따분이’, ‘부럽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불안이’의 비중이 매우 큰데 《인사이드 아웃 2》는 성장기에 찾아오는 불청객과도 같은 낯선 감정, ‘불안 심리’에 주목한다.


우리는 왜 불안한가?
그렇다면 특히 성장기에 왜 불안이 찾아올까?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은 『불안(Status Anxiety)』에서 불안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어렸을 때는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 아무도 크게 마음을 쓰지 않으며,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 무조건적인 애정을 얻을 수 있었다. 우리는 무력하고 벌거벗은 상태에서 부모의 돌봄을 받으면서 처음으로 사랑을 경험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애정은 성취와 관련을 맺기 시작한다.” 다시 말해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무조건적인 애정을 받았던 우리는 나이가 들어 가면서 어떤 성취를 이루었는지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애정의 정도가 바뀌고 극단적으로 아예 애정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알랭 드 보통은 말한다. 우리는 “부엌 바닥에 집짓기 블록을 늘어놓기만 해도, 부드럽고 통통한 몸을 뒤치며 믿음이 담긴 눈으로 말똥말똥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를 끌어안아 주었던 그 관대하고 무차별적인 사랑을 다시 붙잡고 싶”어 한다고. 그런데 슬프게도 성장하면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사랑은 보통 이런 ‘관대하고 무차별적인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야 얻을 수 있는 ‘조건적이고 차별적인 사랑’으로 변질되고 만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1989)라고 항변하는 듯한 영화 제목은 역설적으로 ‘행복은 성적순’이라는 우리 사회의 기본 전제를 재확인시켜 줄 뿐이다. 어린 시절에 받았던 무차별적인 사랑에 대한 갈망과 좋은 성과를 얻어야만 조건적으로 사랑이 주어지는 현실, 이 둘 사이의 극심한 간극은 바로 성장기에 찾아오는 불안의 요체다. 


불안을 뿌리째 뽑아내야 할까?
《인사이드 아웃 2》에서 라일리가 겪는 불안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 있다. 라일리는 친구들과 아이스하키 캠프에 참가하는데 여기에서 실력 발휘를 해야만 코치에게 발탁되어 고등학교 아이스하키 팀에 합류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라일리의 인정 욕구와 불안 심리가 발현한다. 

문제는 ‘불안이’가 ‘기쁨이’를 비롯한 다른 감정을 모두 쫓아내고 라일리의 감정을 지배한다는 데 있다. ‘나는 충분하지 않아.’를 무한 반복하는 불안 심리로 인해 라일리는 혼자 돋보이기 위해 무리한 플레이를 일삼으며 팀워크를 해치고 만다. 

‘나는 충분하지 않아.’로 대표되는 불안이의 반대편에는 ‘나는 좋은 사람이야.’라는 무한 긍정의 기쁨이가 자리하고 있다. 기쁨이는 1편에서도 라일리의 내면에서 중심을 잡아 주는 캐릭터였는데 2편에서도 결국 폭주하는 불안이를 막아 내는 주역이 된다. 하지만 《인사이드 아웃 2》에서는 불안이 부정적인 것이고 기쁨은 긍정적인 것이라는 식의 단순한 이분법적 결론에 도달하지 않는다. 

기쁨이는 불안이의 폭주를 막기 위해 불안 나무를 뿌리째 뽑아 버리고 불안이에게 말한다. “너는 라일리가 누구인지 결정할 수 없어.” 하지만 그 순간 기쁨이에게 중요한 깨달음이 찾아온다. 기쁨이는 자기 자신도 라일리의 정체성을 결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결정해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기쁨이는 기쁨 나무를 스스로 뽑아 버린다. 그러자 라일리 내면에서 다양한 음성이 들려온다. “나는 충분하지 않아.” “나는 좋은 사람이야.” “나는 이기적이야.” “나는 친절해.” “나는 용감하지만 두렵기도 해.” 라일리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것은 기쁨이도 아니고, 불안이는 더더욱 아니며, 다름 아닌 이 모든 감정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불안이를 뿌리째 뽑아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면의 불안이를 대면하고 인정하고 보듬어 주고 다독여 주고 어루만져 주어야 한다. 내가 느끼는 그 불안의 감정마저도 소중한 나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 불안이를 뿌리째 뽑아낸 결과가 아니라 불안이를 다루는 그 모든 과정이야말로 인격 형성의 과정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노동욱 ​삼육대학교 창의융합자유전공학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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