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용되는 성경 구절 (72) 야고보서 2장 2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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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2장 24절은 사람이 믿음으로만 아니라 행함으로 의롭게 된다고 가르치는 듯이 보인다. 이것은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된다고 확언하는 로마서 3장 28절과 상충하여 보인다. 이러한 이유로 마르틴 루터와 같은 위대한 개혁자도 바울(로마서의 저자)의 신학은 칭송하면서, 야고보(야고보서의 저자)의 가르침은 격하시켰다. 그러나 로마서와 야고보서 모두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이 아닌가?
본 구절을 올바르게 사용하기 위하여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본 구절을 문맥(약 1:19~2:26) 안에서 읽고,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이다. 먼저 문맥은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으려는 유대화주의자들과의 논쟁과 관련되어 있지 않다. 이것은 율법주의적인 행함에 대하여 다루고 있는 로마서 3장 28절의 문맥과는 사뭇 다르다. 또 야고보는 유대교의 율법 준수와 관련된 신학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지도 않다. 대신에 야고보가 문맥 가운데서 하는 이야기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약 1:27) 윤리적인 성격을 띤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을 위하여 그는 한 가지 실제적인 예를 든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 2:15~17). 이런 윤리적인 가르침과 그를 위한 실례를 통하여 야고보는 분명한 가르침을 결론으로 서술한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 2:26). 그러므로 본 구절에서 말하는 “행함”은 소외당한 자들을 돌보고 가난한 자들을 돕는 윤리적인 생활(“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에 관한 것이다.
본 구절에 대한 올바른 사용을 위해서 두 번째로 해야 할 일은 야고보서 전체를 관통하는 (믿음과 행함의 관계에 대한) 신학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야고보는 믿음과 행함의 관계를 분리나 배제로 접근하지 않는다. 그는 믿음과 행함을 상호 불가분리의 관계로 보고 있으며 상호보완적인 것으로 이해한다. 야고보의 신학적인 체계에서 “행함”은 “믿음”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며 “믿음”은 “행함”과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에게 있어서 믿음과 행함은 구원이라는 동전의 서로 다른 양면이다. 이러한 그의 믿음과 행함 사이의 관계에 대한 신학은 계속해서 확인된다.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구원하겠느냐”(약 2:14).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 2:17). “행함이 없는 믿음은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약 2:21).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약 2:22).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 2:26). 이러한 야고보의 신학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야고보는 사람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는 단순한 믿음의 고백만으로 사람이 의롭게 될 수 있다는 것은 부인한다. 믿음에는 선한 행위가 수반되며,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는 그 믿음의 생명력은 선한 행실로 입증된다. 만일 아무런 ‘행함’이 없다면 참된 믿음이 없음이 분명하다”(재림교회 성경주석, 약 2:24).
결론적으로 본 구절은 신학적인 가르침으로서의 행함으로 말미암는 의를 말하고 있지 않다. 대신에 야고보는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을 위한 선한 행함이 없는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아무런 가치와 능력이 없는 명목상의 믿음에 대하여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다. 실제적인 행함이 따르지 않는 믿음만으로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진술하고 있다. 한마디로 윤리적인 “행함”이 결여된 “믿음”은 아무런 효력이 없다는 것이다.
- 지상훈 토론토 한인교회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