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붙이는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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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사미디어
등록일 2024.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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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꽃 이름 외우기를 좋아한다. 새 이름도 나무 이름도 별 이름도 물론 배우고 싶다. 내 삶의 든든한 배경이요 매일 기쁨과 행복과 위로를 주는 나의 사랑스런 길동무, 온갖 찬사를 부어도 부족한 자연과 좀 더 친숙해지고 싶어서 틈나는 대로 이름을 외운다. 그래도 여전히 초보 수준이다. 정식으로 배우지 못하고 기회 닿는 대로 하나씩 익히는 터라 진도가 느리다. 앞으로 두고두고 천천히 배워 가며 풀과 나무와 꽃과 새들과 친해질 생각을 하면 나이가 들어도 지루할 일이 없을 것 같다.
신록이 눈부신 어느 초여름 날, 태백산 만항재를 찾았다. 해발 1300고지의 높고 깊은 숲은 수많은 꽃무리로 금빛 은빛 별을 뿌려 놓은 듯했다. 대부분 생전 처음 보는 꽃들이었다. 다행히 야생화 사진작가를 만나 두루미꽃, 벌깨덩굴. 큰앵초, 족두리풀 등의 이름을 배우고는 얼마나 기뻤는지. 깊은 산속에서 조용히 피었다가 지는 풀꽃들을 찾아내고 이름을 붙여 주어 우리가 다정하게 불러 줄 수 있게 해 준 선배들이 새삼 고마웠다. 걸음마다 은은한 향수를 뿌려 주는 은방울꽃, 수줍게 고개 숙인 소녀 같은 애기나리, 허리를 곧추세운 당당하고도 기품 있는 은대난초, 모두 올해 사귄 꽃 동무들이다.
올봄에 새로 익힌 또 하나의 꽃이 있다. ‘봄까치꽃’이다. 원래 ‘큰개불알꽃’으로 불리는데 우리 강산의 토종 야생화를 사랑하고 우리말을 아끼는 분들이 새로 이름을 붙여 주었단다. 참 귀엽고 이쁜 이름이다. 이 꽃 이름을 가만히 소리 내어 부르면 새봄을 불러오는 산까치의 명랑한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겨울이 채 가시지 않은 흰 눈밭에 영롱한 푸른 빛으로 피는 아름다운 꽃이다. 땅에 붙어서 나지막이 피지만 그 생김새는 밝고 당차다. 추위도 바람도 아랑곳하지 않는 굳센 의지가 대견하다. 무채색의 황량한 겨울 들녘에 파란 보석이 박힌 듯한 앙증맞은 식물을 쪼그려 앉아 어루만지며 “예쁘구나. 참 예쁘구나!”라고 칭찬을 쏟아붓곤 한다. 이름은 이렇게 친밀감을 주고 사랑스러움을 더한다.
때로 처음 보는 꽃을 만나면 내 맘대로 이름을 붙여 준다. 어느 봄날 강원도 한 동산에서 눈부시게 핀 흰색의 자잘한 꽃들을 발견하고는 너무 고와서 ‘천사의 미소’라고 불러 주었다. 자연 치유 센터를 운영하는 부모를 도와서 온갖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일하는 아가씨가 어느 날 정원에 물을 주고 있었다. 해사한 미소가 그 꽃과 닮았다는 생각을 하며 꽃 이름을 물어보니 본인이 직접 사다 심었다며 그 식물은 ‘유럽 봄맞이꽃’이라고 알려 주었다. 이렇게 ‘천사의 미소’는 제 본명을 찾았지만 내가 붙여 준 별칭 하나를 달고 나의 봄날을 화사하게 장식해 줄 또 하나의 친구가 되었다.
집 주변의 산책길에서 자주 만나는 보랏빛 꽃도 아직 이름을 몰라서 자수정꽃으로 부른다. 하늘나라의 새 예루살렘성의 성곽이 보석으로 되어 있고 그 보석 중 하나가 자수정이라고 하니 내가 붙인 이 꽃 이름을 불러 줄 때마다 우리가 마침내 들어갈 하늘 본향을 떠올릴 수 있어 기분이 좋다. 이렇게 이름을 붙여 주고 불러 줄 때 그 꽃은 내게로 와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 나의 꽃이 된다. 내 마음의 비밀 정원에서 추억의 향기를 날리며 언제나 지지 않고 하늘거린다.
꽃 이름을 배우고 익히며 어느 날 문득 든 생각이 있다. 내가 머무는 일상의 공간에도 이름을 붙여서 독특한 의미를 심어 보아야지. 올봄 새로운 거처로 이사했다. 소박하지만 결혼하고 처음으로 나의 집으로 불러 보는 아늑한 보금자리다.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거실에 서면 한 조각 하늘이 보이고 부엌에선 멀리 우람한 산자락이 보여서 감사하다. 시야에 들어오는 좁은 하늘에 대한 아쉬움 대신 마음에 드넓은 하늘을 품고 살기로 하니 넉넉한 안식처가 되었다.
이사 오기 전부터 하나님께 기도했다. ‘초기 교회의 가정 교회처럼 이곳이 말씀을 나누고 떡을 떼며 서로 돌아보고 격려하는 영혼의 목장이 되게 해 주세요!’ 남편은 성경 가르치기를 좋아하고, 시어머니는 건강 요리를 잘하시고, 나는 사람들 불러오기를 잘하니 삼위일체 사역을 펼칠 수 있는 곳이다.
여러 해 전 우리 집에 놀러 온 한 친구가 있었다. 시어머니와 남편과 내가 역할을 분담하며 큰 충돌 없이 사는 모습을 보고 “너희 가족 삼위일체네!”라고 했다. 삼위일체란 기독교에서 아버지와 아들, 성령 하나님이 서로 다른 개체이지만 한 목적으로 하나를 이루어 존재하시는 것을 말한다. 결혼 후 시어머니와 줄곧 함께 살며 소소한 갈등도 많이 겪었지만 세월이 흐르는 동안 서로에게 적응하는 법을 배웠고 이제는 그런대로 조화롭게 살고 있다. 인간 공동체에서 이루어 내기 힘든 꿈의 연합을 우리에게 빗댄 그 친구의 말에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 것처럼 기뻤다. 귀한 이름을 받은 후로 우리 가정은 삼위일체 가족이 되어 버렸다. 때로 불만이나 불평의 마음이 꾸물꾸물 올라올 때 우리 집의 정체성을 담아 붙여 준 이름을 떠올리면 부정적인 생각이 스르르 사라진다. 이름이 지닌 위력이다.
새로 살게 된 아파트의 세 개의 방에도 이름을 붙였다. 내가 머무는 곳은 “항상 기뻐하라 방”, 줄여서 <기쁨방>이다. 기도와 말씀으로 사시는 시어머니 방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 방” 곧 <기도방>이요 남편의 서재는 “범사에 감사하라 방” 즉 <감사방>이다. 좀 속상한 일이 생겨도 기쁨방에 들어가면 지난날 받은 은혜의 기억들이 떠올라 금세 기쁨의 샘물이 차오른다. 기도방에서 하늘과 친밀하게 소통하며 사시는 어머니께서 가족과 친척들을 두루 기도의 울타리로 감싸 주시니 든든하다. 감사방에서는 감사 에너지로 충전된 남편이 모든 일에 ‘감사, 감사’를 외치며 감사 바이러스를 집 안 가득 퍼뜨린다. 웃는 만큼 웃을 일이 생긴다고 하듯이 기쁨과 기도와 감사로 방 이름을 붙이고부터 생각과 감정이 그 이름대로 빚어지는 것을 느낀다. 더불어 집 안 분위기도 긍정의 밝은 기운으로 채워진다. 감사방을 쳐다만 보아도 불만으로 헝클어지는 맘이 금방 감사로 회복된다. 기도방에서는 하늘의 임재가 느껴진다. 한순간의 마법 같은 변화다. 덕분에 우리 집은 기도로 하루를 열고 기쁨으로 일하며 감사로 한 날을 닫는 행복한 공간이 되었다.
내 이름이 불릴 때 귀를 쫑긋 세우고 온 맘을 기울이듯 내가 이름을 불러 주는 모든 대상은 특별한 의미의 옷을 입고 내게로 다가온다. 평범한 공간이지만 새겨진 이름 덕분에 의미 있는 장소가 되고 새 역사를 창조하는 무대가 된다. 나와 연결된 다양한 환경에 이름을 붙여 주고 불러 줌으로 반복되는 일상에 새로운 옷을 입혀서 행복을 창조하는 삶을 독자 여러분에게도 권해 본다.
- 권영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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