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기] 올림픽 폴리클리닉에서 자원봉사한 김민지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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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 김범태 기자
kbtlove@kuc.or.kr
입력 2018.03.06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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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순간, 말이 막히지 않게 해 달라’ 간절히 기도했더니...
폴리클리닉을 방문한 외국인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고, 어떤 일로 오게 되었는지 물은 후 등록해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 일이었다. 환자가 병원에 들어서고 나갈 때까지 계속 통역을 하는 업무였다.
의사선생님 대부분 영어를 잘하셔서 큰 문제가 없지만, 몇몇 분은 의사소통에 약간 어려움을 겪으셔서 조금씩 도와드렸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가 확정된 후부터 막연하게나마 ‘대학생이 되면 올림픽에서 봉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2학년 겨울방학 기간이었고, 아직 예과 과정이라 ‘마지막으로’ 긴 방학을 보낼 수 있어 봉사자로 참여했다. 학교에서 단체로 자원봉사자를 신청해 비교적 수월하게 함께할 수 있었다.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이 언제 다시 열릴지 모르니 더욱 하고 싶었다. 항상 경기를 집에서 TV로만 봤기에, 실제로 그 현장에 가보면 어떤 느낌인지도 너무 궁금했다.
의료통역 파트에 배정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잠시 걱정이 되었다. 부랴부랴 의학용어들을 복습하려 했지만, 왠지 방학에는 공부를 하고 싶지 않았다. 막상 현장에 투입되니 그제야 걱정이 밀려왔다.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가기에 앞서 ‘중요한 부분에서 말이 막히지 않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다행히 끝날 때까지 별 탈 없이 잘 수행할 수 있었다.
폴리클리닉에서의 하루 일과는 매우 바빴다. 개막식 전에는 3교대 근무였다. 오전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오후 3시부터 밤 11시까지, 밤 11시부터 오전 7시까지. 이렇게 배정되어 있었다. 개막식 후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데이), 오후 3시부터 밤 9시(이브닝)로 근무가 바뀌었다. 아침에 출근하면 출근부를 작성하고, 접수대 옆에 앉아 있다가 외국인이 들어오면 가볍게 인사를 하고 통역을 도왔다.
병원이 1층과 지하 1층 구조로 되어 있어서 안내하는 역할도 했다. 이브닝 시간에 출근하면 9시쯤 노로바이러스 예방을 위해 모든 곳을 소독하고 퇴근했다. 병원을 비울 수 없기에 자원봉사자끼리 교대로 식사를 했다. 같이 근무했던 의료보조 친구들은 접수대를 맡았고, 밖에서 환자들이 들어오면 손소독제를 뿌려주기도 했다.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도 있다. 개막식 전 3교대 근무를 할 때의 일이다. 오전 7시에 출근하려면 새벽 4시45분에 출발하는 셔틀버스를 타야 했고, 밤 11시에 퇴근하면 숙소에 도착해 셔틀버스에서 내리면 새벽 1시가 가까운 시간이었다. 문제는 우리 숙소가 치악산에 있어 가로등이 하나도 없는 어두운 산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250m 정도의 거리를 모두 함께 핸드폰에 있는 손전등 빛을 켜고 걸어가야 했다. 날씨도 너무 춥고, 어두운데다 눈까지 와서 길이 무척 미끄러웠다. 너무 힘들고 무서웠다. 그런데 며칠 후, 숙소에 계시는 선생님들께서 숙소에서 셔틀버스 정류장까지 차를 운행해주시겠다고 했다. 당직을 바꿔 서시면서 새벽과 밤늦게 어느 때든 태워다 주셨다. 대회가 폐막하고 모두 퇴소하는 2월 26일까지 차량을 운행해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이분들이야 말로 자원봉사자를 위해 봉사하는 ‘숨은 봉사자’였다.
이번 경험은 내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물했다. 지구촌 각지에서 온 수많은 선수들을 직접 만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실제 올림픽 메달을 구경하거나, 별로 성적이 좋지 않다고 우울해 하는 선수에게 위로를 해주는 모든 시간이 기억에 남는. TV로 볼 땐 마냥 멀어 보이던 선수들이 모두 가까운 사람들, 마치 내 일처럼 느껴졌다. 새삼 올림픽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고, 이런 세계적인 행사에 기여할 수 있어 행복했다.
한번은 크로아티아 선수와 함께 길을 걸어가는데, 내가 크로아티아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 이제껏 도도하던 그가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짓궂은 거짓말을 하고는 “나중에 다 장난이었다”면서 억울해하는 내 모습에 깔깔거리고 웃던 불가리아 선수들도 있었다. 개구쟁이 같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떠오른다.
핀란드의 어느 코치는 통역을 잘해줘서 고맙다고 인사하며 나의 어깨를 툭툭 쳐주었다. 미국 국가대표 팀닥터는 “의과대학 학생이냐”고 물으며 “정말 가치 있는 경험”이라고 격려해 주었다. 처음 보는데도 선뜻 다가와 통성명을 하던 잘 생긴 캐나다 선수의 백만불짜리 미소도 이젠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
솔직히 평창에 가기 전까지는 ‘안 그래도 짧은 방학인데, 괜히 한 달이나 봉사한다고 신청했나’ 하는 후회도 잠시 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니 만약 다음에 또 이런 기회가 있다면 꼭 다시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들만큼 값지고 보람 있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좋은 기억만 있는 건 아니다. 씁쓸한 장면도 많았다. 특히 봉사자들이 맡겨진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 모습은 타인에게 불편과 어려움을 주었다. 출근부만 작성하고 얌체같이 몰래 빠져나와 다른 곳에서 놀다 오거나 무단결근을 하는 무책임한 사람이 정말 많았다. 실제로 올림픽플라자는 놀거리, 볼거리가 풍성했다.
통역요원인데 주업무인 통역도 하지 않고, 그렇다고 업무보조를 하는 것도 아닌 그냥 와서 가만히 앉아 있다가 가는 황당한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열심히 일한 봉사자보다 유명선수의 사인을 훨씬 많이 받거나, ‘올림픽 속의 올림픽’이라 불릴 정도로 인기인 배지 트레이드에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은 정말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렇지만 그럴 때마다 ‘작은 일에 충성하자’는 마음가짐으로 마지막까지 주어진 임무에 충실하며 열심히 근무했다. 이번 올림픽 자원봉사 활동을 통해 지구촌 축제에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폴리클리닉에 와서 치료를 받고 기쁜 마음으로 돌아가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중에 의사가 되어서도 참여하고 싶다’는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자원봉사자로 신청하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전과는 달리 외국인과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게 훨씬 편해진 점도 좋다. 선수촌을 나오면서 함께 활동했던 친구와 “이제는 외국인만 보면 가서 통역해주고 싶은 충동이 인다”며 웃을 정도로 자연스러워졌다. 이번 경험은 정말 나의 인생에서 손꼽을 만한 즐겁고 보람 있는 시간이었다.
글 - 김민지(동중한 영동교회 / 연세대 의대 의예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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