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MM 수기①] 기도도 부끄러워하던 내가 선교사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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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 김범태 기자
kbtlove@kuc.or.kr
입력 2019.02.18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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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선교사들의 해외선교 체험담 ... “나도 이제 영원한 선교사”
자원하여 참가한 어린이선교사들은 이 기간 동안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에서 해외단기선교 활동을 펼쳤다. 영남, 충청, 호남은 12월 24일부터 1월 3일까지 인도네시아 메단에서 진행했으며, 동중한과 서중한은 1월 7일부터 열흘 동안 필리핀 1000명선교사훈련원본부 근교에서 복음을 전했다.
어린이선교사들은 이를 위해 지난해 9월부터 3개월간 율동, 악기, 찬양, 영어성경이야기 등 해외선교에 필요한 내용을 준비했다.
<재림마을 뉴스센터>는 이 운동이 자라나는 세대에게 어떤 변화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왜 필요한지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CMM에 참가한 어린이선교사, 청소년선교사, 지도교사, 인솔 목회자 등의 체험수기를 옮긴다. - 편집자 주 -
■ 김예진 어린이선교사
솔직히 CMM 선교활동에 오기 전까지 나는 선교에 대해 아무 관심이 없었다. 단순히 ‘참소리전도단’ 친구들이 간다기에 호기심에 따라왔다. 내성적이고 소심한 나는 평소 선교가 부끄럽고 어렵게 느껴졌다. 그건 특별한 사람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무 곳에서, 심지어 식당에서 기도하는 게 아주 쑥스러웠다. 그럴 때면 고개를 푹 숙이고 얼굴을 제대로 들지 않았다.
그런데 CMM을 오고 난 후 생각이 완전 바뀌었다. 왜 지금까지 선교를 부끄럽게 여겼는지 나 스스로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처음에 선교지에 도착하고 나서는 무척 당황했다. 불편한 점이 너무 많아 한국이 그리웠다. 씻는 것부터 시작해 개미는 물론, 이름을 알 수 없는 벌레들이 우글우글했다. 그런데 하루 이틀이 지나니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시는 것 같았다. 점점 잠자리가 익숙해지고 씻는 것이 편해졌다. 그래도 벌레는 어쩔 수 없었다.
서서히 선교가 좋아졌다. 필리핀 친구들에게 전도하면서 느꼈다. 내 꿈이 점점 선교사로 바뀌고 있다는 걸. 선교가 좋고, 모든 게 행복했다.
민경채 목사님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원하는 걸 그냥 주시지 않고, 어떤 때는 기회로도 주신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내게 CMM을 통해 선교사가 되는 꿈을 갖게 하려는 기회를 주셨다. 이번에 나는 나중에 1000명선교사가 되어 다시 선교지를 방문하기로 결심했다. 아무리 더럽고 전기가 없어 불편하더라도 선교할 때는 참을 것이다. 아니, 참을 수 있다!
언제나 우리를 향해 밝게 웃던 필리핀 친구들을 잊지 않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전할 것이다. 선교사가 되는 길은 멀고도 험할 테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잊지 않고 생활한다면 선교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도 필리핀 친구들을 위해 기도한다.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번에 만난 아이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열심히 기도하고, 말씀을 전하면서 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 김휘강 어린이선교사
누군가 내게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열흘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선교지에서 있었던 때라고 말할 것이다. 아마 이런 나의 대답에 동의하는 사람도 적잖을 것이다.
물론, 선교지는 상상이상으로 매우 열악했다. 숙소는 비가 새서 벽지가 젖었고, 개미와 바퀴벌레가 득실거렸다. 화장실은 좁고 더러웠다. 한국에서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우리 ‘선교사’들에게 그런 환경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다들 입을 모아 불평했다. 하지만 하루이틀 시간이 지나며 마치 제집인 거 마냥 뒹굴고 수다를 떨었다. 아마 목사님과 선생님이 솔선수범 봉사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바퀴벌레가 나와 소리를 지르면 목사님들이 쏜살같이 달려와 잡아주셨고, 너무 더러워 아무도 쓰지 않았던 안쪽 화장실을 소매를 걷고 나서서 말끔히 청소해주셨다. 선생님들은 부엌을 떠나지 않으시며 우리가 행복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나는 선교지 아이들과 자주 놀았다. 그곳은 빈민가였지만, 아이들의 웃음은 참 예뻤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아이들에게 감동을 받았다. 우리는 100% 영어로 소통했다. 1000명선교사 누나의 도움으로 그곳 아이들과 이야기할 수 있었다. 평소 영어회화에 자신이 없던 나는 대화를 나누며 뿌듯했다. 그들은 우리에게 인도네시아어와 게임을 가르쳐주었고, 우리는 그들에게 한글을 가르쳐 주었다. 나중에는 다 같이 길에서 땅따먹기 놀이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선교지 활동을 마치고 호텔에 머무를 때, 아이들과 그곳에서의 추억을 이야기했다. 열악했던 환경에 대해 경악하다가도 끝마무리는 항상 감사였다. 내게 감사의 마음을 배우게 해준 CMM이 너무 고맙다.
■ 안성현 어린이선교사
작년에 ‘어린이 사관학교’를 처음 참가한 나는 그곳에서 CMM 어린이선교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처음에는 아빠가 경험이라고 해서 가려고 했다. 그러다 나중엔 너무 힘들 것 같아 취소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신청이 완료되어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먹기’로 갈 수 밖에 없었다.
출발 전, 한국에서 3번의 훈련이 있었다. 그때는 훈련보다는 교육이 끝나고, 친구들과 노는 시간이 더 좋았다. 드디어 필리핀으로 떠나는 날. 약속 장소에서 일행을 만나니 더욱 반가웠다. 함께 가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봉사활동이니까 열심히 하자’ ‘필리핀에 있는 어린이들에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자’라고 생각했다.
1000명선교사훈련원에 도착해 훈련을 받으며, 나는 내 자신이 변화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어느새 기도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고, 기도의 능력을 믿고 있었다. 우리의 선교지는 ‘비난’이라는 곳이었다. 비록 약하고 힘이 없지만, 그곳에서 하나님을 전하며 기쁨을 느꼈다. 내가 선교사가 되어 말씀을 전할 때, 모두 긍정적이고 마음이 열려있어서 고마웠다. 서로 들으려하고 잘 따라해 주었다. 하나님께서 내 길을 예비해 주시는 것 같았다. 우리를 평탄케 인도하셔서 모든 일을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게 하셨다.
1000명선교사훈련원 ‘파송의 탑’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다.
‘ONCE A MISSIONARY ALWAYS A MISSIONARY’
이 말처럼 나도 이제 영원한 선교사다. 지금은 어리지만 훗날 1000명선교사에 지원해 꼭 하나님의 종이 되고 싶다. 앞으로 어린이선교사답게 모든 일에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다. 이런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 유시우 어린이선교사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잘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말씀하셨다.
“어린이들이 해외에서 전도할 수 있는 CMM 선교사가 있는데, 너도 한 번 가볼래?”
나는 그냥 흔쾌히 가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지나 어느덧 사전미팅 날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예전에 다친 오른쪽 다리가 불편해 조금 힘들었다. 그렇지만 곧 만나게 될 친구들에게 전하기 위해 율동과 노래를 열심히 배웠다.
드디어 크리스마스이브이던 12월 24일, 우리는 김해공항에서 출발해 인도네시아 ‘똥깅’이라는 곳에 도착하게 됐다. 우리는 성경학교를 열었다. 그곳 아이들에게 다양한 율동도 가르쳐 주고, 니느웨성 이야기,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등 성경에 나오는 역사를 소개하면서 예수님을 전했다.
인도네시아 아이들과 우리 대원들 모두를 위해서 나는 간절히 기도했다. 성경학교의 마지막은 다양한 부스를 운영해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마을청소도 하고, 가져온 물품을 교회에 기증했다. 아이들에게는 준비한 선물을 나눠주었다.
CMM 선교사로 참여하면서 처음에는 잘 해내야 한다는 생각에 긴장됐다. 그러나 막상 해보니 즐겁고, 내 몸이 절로 흥이 나서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선교여행을 하면서 대원들이 서로 돈독해지고 사이가 더 가까워졌다.
한국으로 돌아오며 우리는 다 같이 예수님의 재림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중에 또 이런 기회가 온다면 선교사로 다시 봉사하고 싶다’는 생각했다. 무럭무럭 자라 이 세상에 있는 모든 하나님의 잃은 양들을 구하고,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사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교회활동에도 열심히 참여하겠다.
■ 임예진 어린이선교사
나는 12살이다. 처음에 1000명선교사훈련원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큰 벌레를 밟았다. 너무 깜짝 놀라 정말 현실 울 뻔 했다. 벌레 때문에 필리핀이 너무너무 싫어졌다.
하지만 선교를 하는 것은 정말 즐겁고 행복했다. 집집방문은 매번 뿌듯했다. 그때마다 거의 방 한 칸 정도의 크기를 가진 집을 많이 봤다. 필리핀 사람들은 그런데도 행복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이들보다 얼마나 더 가진 게 많고 행복한가’라는 생각을 하며 감사했다.
우리가 다른 마을을 방문하러 다닐 때면 아이들이 우리 뒤를 따라다녔다. 내 생각엔 사탕이나 과자를 더 받으려고 그러는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 율동을 가르치는 것도 정말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똘망똘망한 눈동자를 반짝이며 우리의 노래와 율동을 따라하는 아이들이 정말 귀여웠다.
솔직히 필리핀에 가기 전까지 나는 선교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CMM 활동을 다녀오고 생각이 180도 달라졌다. 나는 언젠가 필리핀에 다시 가서 꼭 선교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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