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기]아드라 해외원정대 김보민 양의 ‘유니언즈’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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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 김범태 기자
kbtlove@kuc.or.kr
입력 2019.08.22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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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있어 고마워. 더 좋은 어른이 되어 만나자. 꼭!”
여성가족부,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이 함께한 이번 해외원정대에는 전국에서 선발한 16명이 참가해 구슬땀을 흘렸다.
‘유니언즈(Unions 2019) - 꿈을 마주하다’라는 타이틀로 꾸민 이번 활동을 통해 봉사와 나눔의 참된 가치를 재발견했다는 김보민 양의 수기를 옮긴다.
■ 7월 26일(금) ...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이른 아침부터 주룩주룩 비가 내렸다. 8시50분쯤 센터로 출발했다. 도착하자마자 농기구를 손에 챙겨들었다. 궂은 날씨 속에 작업을 시작했다. 단원들의 손에 저마다 망고나무가 한 그루씩 들려있었다. 50cm 정도 구덩이를 파고, 바깥의 비닐과 나무뿌리 부분의 끈을 풀고 땅에 묻어 심으면 된다.
아이들에게 선물할 각자의 나무를 밭 주변에 둥그렇게 서서 심었다. 온몸이 비와 땀으로 흥건히 젖었다. 센터로 돌아와 각자의 망고나무 이름을 정하고 발표했다. 나는 ‘푸르게 커서 우리의 몫까지 센터 아이들의 곁에서 지켜주세요, 그들을 돌보아주세요’란 바람을 담아 <푸름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망고나무가 어서 무럭무럭 자라 아이들의 곁을 지켜주고, 연약하지만 가장 강인한 어른이 될 수 있도록 도우면 좋겠다.
태국의 아이들과 우리가 온 진심과 생명력을 다해 커나가 주변의 웃음을 넘어서는 그 무엇인가에 귀 기울이고, 수다에 매몰되지 않고, 개인의 욕구나 욕심만을 바라지 않은 채,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랐다.
오전 11시50분. 부랴부랴 씻고 짐 정리를 한 뒤 센터로 다시 돌아가 점심을 먹었다. 약속한 시간이 되어 차에 올랐다. 이날부터 우리의 숙소가 될 호텔로 향했다. 차창 밖으로 파인애플을 파는 사람, 꽃목걸이를 파는 사람, 빵을 파는 사람이 드문드문 보였다. 트럭을 개조해 양옆에 사람을 태운 차량이 많았다. 신기한 듯, 일행의 시선이 모두 한 곳으로 쏠렸다.
호텔에 도착해 짐을 풀자마자, 곧바로 방에 모였다. 성균이가 알려주는 태권무를 복습하기 위해서다. 나이에 상관없이 단원 개개인이 정말 한가지씩의 일에서 도움이 필요한 곳에 스스로 다가서서 가르치고, 진행하는 모습이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저녁이었다.
■ 7월 29일(월) ... 아쉽고도 어려웠던 작별인사
오늘의 ‘하루 반장’인 정훈이의 기상을 외치는 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났다. 수영장 옆에 있는 체조 장소에 모두가 모였다. 박근환 선생님과 임천혁 국장님, 최성은 선생님, 임영옥 선생님 등 어른들이 모두 환히 웃으며 맞아주셨다.
오전 8시. 아침을 먹고 차에 올라 아드라 센터로 향했다. 저학년인 하쿠, 록블라, 기센나가 마중을 나왔다. 함께 트럭을 타고 이동했다. 후텁지근한 날씨와 시원한 바람, 세 아이들의 웃음이 더해지니 40여 분의 이동시간이 참 즐겁고 짧게 느껴졌다.
센터에 도착해 체육대회 일정을 조율했다. 서둘러 한식 교류와 체육대회 최종 마무리 준비를 했다.
먼저 도착한 혜정이와 예원, 승민이가 벌써부터 땀을 뻘뻘 흘리며 떡볶이와 화채를 만들고 있었다. 라볶이를 준비하는 혜정이와 예원이의 손길이 분주했다. 떡볶이에 들어간 떡이 익자 기다렸다는 듯 라면사리와 계란, 파를 넣고 한소끔 익혔다. 승민이의 화채 팀은 과일을 모두 송송 썰어 넣은 그릇에 탄산음료를 부었다. 성균이도 빠질세라 김치전을 만들었다.
센터 아이들도 그 주변에 둘러서서 재잘재잘 뭔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신기한 듯, 재밌는 듯 요리가 만들어지길 기다렸다. 몇몇 아이들은 정훈이와 수경이가 빚는 호떡 팀에 합류해 난생 처음 호떡을 구웠다. 한쪽에서는 예린이가 체육대회에 사용할 박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었다.
제일 먼저 완성된 라볶이를 한 테이블당 한 개씩 준비해 아이들과 센터 선생님들께 드렸다. 여기에 호떡과 감자전, 화채를 곁들여 팟타이와 함께 식탁에 올렸다. 팟타이에 호떡 하나, 팟타이에 감자전 하나를 들고 맛있게 먹는 아이들의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한국음식이 이곳 아이들에게는 생소하지만, 직접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준 것 같아 보람찼다.
오후 2시. 체육대회가 진행될 시간이다. 성경이와 예린, 성균이가 새벽 3시까지 잠도 안자고 만든 태극기와 태국 국기가 운동장에 펄럭였다. 우리는 청팀과 백팀으로 나눈 이름표 모자를 눌러 썼다. 예린이의 ‘새천년 체조’를 시작으로 막을 올렸다. 동작 하나하나에 아이들이 신기한 듯 깔깔거리며 웃음꽃을 터뜨렸다.
재영이의 진행과 성경이의 통역으로 ‘볼풀공 게임’ ‘2인3각’ ‘풍선 터트리기’ ‘고깔 찾기’ ‘줄다리기’ 등 다양한 순서가 이어졌다. 남국의 따가운 햇볕에 금세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지만, 그만큼 열정도 뜨거웠다. 각 종목마다 식혜와 약과 등 한국전통 음식을 나누며 아이들이 체험할 수 있도록 한 점도 눈길을 끌었다.
봉사단원들은 청팀 혹은 백팀에서 누군가 더 점수를 얻게 되면 센터 아이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한국어로 “상대 팀의 점수가 낮으니 동점이 되도록 배려하면서 하자!”고 말하며 모두가 함께 기쁨을 나눌 수 있도록 진행했다. 그 마음 씀씀이가 너무 기특하고 예뻤다.
어느덧 아이들과 헤어질 시간. 한바탕 웃음이 휘몰아치고 간 자리에 갑자기 초연한 감정이 먼지처럼 일었다. 봉사단 모두가 이 시간이 마지막임을 깨달았다. 센터의 아이들도 이를 아는지 노래를 부르며 엉엉 눈물을 흘렸다.
아쉽고도 어려웠던 작별인사를 나누고, 차에 올랐다. 창문 너머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눈가를 적셨던 눈물자국이 서서히 증발되는 것 같았다. 아마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지금 이 순간이 퇴색될 지도 모른다. 이렇게 짙은 여운이 기억에 스민 땀과 열정을 망각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이들과 흘린 눈물, 그 눈물은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록블라의 눈물, 부뜨의 눈물, 카녹의 눈물, 기센나의 눈물, 태국 센터에서 만났던 모든 아이들의 모습은 영원히 내 기억에 남아 있을 것이다. ‘유니언즈(Unions 2019) - 꿈을 마주하다’라는 타이틀처럼 우리가 품은 꿈과 아이들의 숨결 하나하나가 엮여 생동할 것이다. 처음에는 서먹하기만 했던 그들이 이제는 내 삶을 영위해주고, 어느덧 살아갈 힘과 책임을 준다는 것을 안다.
■ 에필로그 ... “네가 나의 모든 하루하루를 만들어 주었어”
“사와디 카”(안녕)
- 매일 아드라센터를 오가며 주고받았던 인사가 맴돈다. 비록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작은 행동과 손길에서 그들의 진심이 전해졌다. 언어와 문화를 넘어서는 환대와 배려를 느낄 때가 많았다.
고작 연필 한 자루, 색연필 한 개비를 받으면서도 정중히 고개 숙여 받는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대한민국에 태어났고, 이곳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일상화되어 당연함처럼 여겨지고 있는 풍요로움과 낭비를 반성했다.
아이들과 반복했던 인사의 시간이 허투루 다가오지 않고 무척 소중했던 것처럼, 봉사단이 아이들에게 건네는 모든 행위가 그들에게 예민하고 중요한 감정인 것처럼, 헤어짐·일상의 부조리함·마주한 아이들의 아픔·무수히 많은 것들이 의미 없이 꺼져가지 않도록 노력하며 살아야 한다고 다짐했다.
“샬라쿤”(사랑해)
- 어릴 적, 동화 속 주인공들은 꿈같은 곳에 다녀오면 그 꿈을 증명해주는 무언의 증표가 곁에 있곤 했다. 단원들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오며 태국에 다녀온 나에게도 어쩌면 기센나가 손수 만들어 묶어준 팔찌가 그것을 증명한다고, 꿈같은 태국에서의 일을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짧은 기간이지만, 일일이 되새기고 곱씹기에 벅찰 정도로 많은 추억을 쌓았다. 그 중에서 “샬라쿤”은 따스하게 기억되는 태국의 단어다. 문화탐방교류를 진행하며 하루 내내 손을 꼭 잡고 있던 록블라가 마지막으로 해주었던 “샬라쿤-”, 헤어질 때 단원 중 제일 어린 수민이가 태국어로 자신이 쓴 편지를 통역해 아이들에게 읽어줄 때 -봉사단과 센터의 모든 아이들이 방울방울 눈물을 떨어뜨렸는데 그 순간-아이들이 한명 한명 안아주면서 해준 말이 “I remember you. I love you. 살라쿤”이었다.
“캄쿤”(고마워)
- “네가 나의 모든 하루하루를 만들어 주었어. 머잖은 미래에 더 좋은 어른이 되어 만나자. 꼭! 몸 조심해. 캄쿤!”
태국에서 통역을 담당해주던 나나가 나에게 적어준 말이다. 봉사자의 입장에서 무조건적으로 무언가를 내어주어야만 하고, 도움만 주는 입장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내가 더 많이 받아가는 것 같았다. 나나와의 약속처럼 더 좋은 어른이 되어 만났으면 좋겠다.
“레오 폭 깐 마이”(다시 만나자)
- 아드라센터 아이들, 현지 선생님과 통역 담당자들까지 태국의 사람들과 함께 봉사했던 16명의 청소년 단원들, 함께 동행하시며 이끌어주신 선생님들께 많은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떠나며 센터의 아이들과 약속했던 “레오 폭 깐 마이”란 말 속에는 커다란 책임감이 담겨 있고, 태국봉사단원들이 앞으로 삶으로 실천하며 나아가야 할 커다란 숙제로서 다가옵니다.
태국에서의 봉사는 여성가족부, 아드라, 담당 선생님, 16명의 봉사단원들이 모두 함께 지지해주고, 함께 있었기 때문에 경험하고 배울 수 있었던 귀한 순간순간입니다. 모두들 참 고맙습니다.
■ 다음 봉사단을 위해 남기고 싶은 이야기
우리는 이번 활동 기간 중 ‘다음에 태국 봉사단에 오는 누군가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라는 주제로 저마다의 속마음을 나눴다. 내년에, 아니면 언젠가 이곳에 오게 될 다른 봉사단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길 바라며 여기 남긴다.
수민이는 “단원들 사이에 서로 소통이 원활하게 되면 좋겠다”고 했다. 수경이는 “가르치는 것보다 함께 놀아주는 게 더 좋다”고 말했다. 재영이는 “오기 전에는 가르치는 걸 중요하게 생각했고, 계획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현지 아이들의 상황을 고려하는 게 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소윤이는 “번역어플도 잘못된 게 많아 태국어를 조금이라도 준비하는 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마술을 준비해 간 정훈이는 “어떤 예상치 못한 상황이 오더라도 그 순간에는 아이들이 되고, 아이들의 시선에서 바라보라”고 했다. 예원이도 “계획에만 집중했는데, 막상 현장에 오면 예상을 벗어나는 경우가 많아 그에 대한 대비책도 늘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예린이는 “작은 것 하나라도 세심하게 챙겨야 한다”고 경험을 전했다.
예빈이는 “내가 가르친 다기 보다는 오히려 더 배운 것 같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주광이 역시 “우리보다 어려운 환경에서 살고 있지만, 아이들 모두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행복이란 꼭 성공해야 얻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고 의젓하게 말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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