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수요일 오후 2시 서울역광장엔 교회가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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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태 기자
kbtlove@kuc.or.kr
입력 2019.12.13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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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방전도로 시작해 3년째 정기 집회 ... 사랑 없인 할 수 없는 봉사
잔뜩 찌푸린 하늘은 심술궂게도 부슬부슬 비를 뿌렸다. 입동이 지나서인지 옷깃을 파고드는 바람이 꽤 매서웠다. 회색빛 콘크리트에 반사된 뿌연 안개가 비 내리는 도시를 더욱 을씨년스럽게 했다.
오후 2시가 가까워지자 광장 한복판에 파란색 천막을 치는 손길이 바삐 오갔다. 화물자동차에서 집기류를 내려 설치하고, 대형 모니터와 마이크, 스피커 등 음향시설이 들어섰다. 노란색 우비를 입은 자원봉사자들은 점점 굵어지는 빗줄기에도 아랑곳 않고, 능숙한 솜씨로 자신의 자리에서 맡겨진 역할을 다했다.
남자들은 거세지는 비바람에 천막이 쓰러지거나 비가 새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했고, 여자들은 빗물에 흠뻑 젖은 의자를 일일이 닦아냈다. 시간에 맞춰 찾아온 손님을 친절하게 안내하는 일도 이들의 몫이었다. 그렇게 30여분 만에 준비가 끝났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계 14:7)라고 쓴 현수막이 펼쳐졌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라는 이름이 선명하다. 서울역광장교회다.
처음엔 정은숙 사모를 중심으로 한 노방전도로 시작했다. 그러다 아예 천막과 화물차, 각종 장비를 구비해 정기적으로 집회를 열기로 했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 일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들만큼 크고 작은 도움과 생각지 못한 역사가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게 벌써 내년 2월이면 만 3년이 된다.
집회는 약 2시간30분 정도 진행한다. 프로그램은 그때그때 약간씩 다르지만, 대개 경배와 찬양 – 말씀 선포 - 퀴즈 – 간식 배부 등의 순서로 꾸민다. 고문으로 수고하는 이병주 목사(한국연합회 안교선교부장)를 비롯한 전ㆍ현직 목회자들이 설교를 맡는다. 소식을 듣고 기꺼이 한달음에 달려와 말씀을 전한다.
참석자들은 다양하다. 바삐 길을 지나던 행인도, 오갈 곳 없는 노숙인도, 심지어 외국인도 이곳에서는 재림성도가 된다. 게 중에는 과거 재림교회를 다녔거나 가족 중에 교인이 있는 사람도 있다. 서울중앙교회나 공릉제일교회, 중화동교회 등 실버세대를 위한 사역을 펼치는 곳에서 복음을 접했던 이들이 찾는 경우도 있다. 기차를 이용하기 위해 들렀다 ‘간판’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발길을 들이거나 한국에 여행을 온 외국인 재림교인이 교회마크를 보고 찾기도 한다. 그야말로 ‘열린 교회’다.
매번 20명 내외의 자원봉사자들이 일손을 돕는다. ‘서울역의 보물’이라는 기악팀을 비롯해 설치, 운영, 안내, 찬양인도, 간식포장, 전도지 분급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기부 형식으로 참여한다. 물론 거리나 위치상 동.서중한 교회 소속 성도들이 대부분이지만 합회나 지역, 단체의 경계를 넘어 자발적으로 찾아온다. 누군가 “각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신앙적으로 모본이 되는 분들”이라고 살짝 귀띔했다.
집회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활동했다는 최정자 집사(신답교회)는 “여럿이 일손을 나누면 조금이라도 힘을 덜 수 있잖나. 그래서 작은 일이라도 돕고 싶은 마음에 참여한다. 이곳에 오시는 분들이 큰 거는 아니어도 육적으로나 영적으로나 보탬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게 제일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옆에서 함께 간식포장을 하던 정명순 집사(군포교회) 역시 “이웃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드리고 싶어 기쁜 마음으로 참여했다. 나의 수고를 통해 이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면 좋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간식은 한 번에 150명분을 준비한다. 김밥과 두유, 과일 등 간편하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다. 여기에 <희망 릴레이> 등 전도지와 소책자를 빼놓지 않고 넣는다. 서울역광장 일대는 취식이 금지돼 있어 비닐봉투에 잘 포장해 증정한다.
이날은 동중한합회 서울 영동교회가 먹거리를 지원했다. 따뜻한 주먹밥과 바나나 등 과일을 정성껏 마련했다. 매주 이렇게 뜻을 같이하는 교회들이 돌아가면서 돕는다. 한 번 집회를 할 때마다 약 50만 원의 재정이 들어간다. 자금은 전액 후원금으로 충당한다. 감동적인 사연을 듣고 십시일반 호주머니를 털어 정성을 모은다. 각 교회의 도르가회나 단체에서도 기부를 해 주지만, 대부분 개인이다. 요양보호사를 하는 어느 여집사는 자신도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지만, 매달 꼬박꼬박 정기적으로 후원을 한다.
이윽고 스피커를 타고 찬양이 흘러나왔다.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라는 가사가 그 어느 때보다 마음에 와 닿았다.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일어나 걸으라’는 메시지가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 찬양의 멜로디는 삶에 지친 영혼들에게 조용히 다가와 회복의 손을 내미시는 주님의 손길처럼 따뜻했다.
설교는 모임의 회장인 노원혜 사모(공항교회)가 맡았다. 낯익은 얼굴에 반갑다고 인사하며 손을 흔드는 이도 있다. 그는 시편 136편 말씀을 인용하며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 역사하신다.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려야 한다. 우리 옆에 언제나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믿고, 그분을 의지하자. 마음의 근심을 털어내고 하늘을 바라보자. 어렵고 험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면, 구원의 소망을 간직하고 살아가자”고 권면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빗줄기가 더 거세졌다. 부슬부슬 내리던 비는 갑자기 한여름 장맛비처럼 폭우로 변했다. 천둥이 요란하게 울려대고, 번개가 번쩍였다. 몰아치는 바람에 천막이 뒤흔들리고, 빗물이 들이쳤다. 봉사자들은 “집회를 시작한 이후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리는 건 처음”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이런 궂은 날씨에도 봉사의 손길을 접지 않는 이들이 대단해보였다. 하긴 날씨가 아무리 안 좋아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그동안 집회를 빼먹은 적은 한 번도 없다.
하필 이날은 1년에 한 번씩 준비하는 광장음악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바이올린, 색소폰, 플루트, 오보에 등 다양한 악기연주와 독창, 중창, 실내악 등 풍성한 레퍼토리로 감동을 선사했다. 화음과 선율을 타고 잔잔한 평화가 깃들었다.
비가 내리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정성껏 준비한 순서가 날씨 때문에 지장을 받아 속상할 텐데 눈살 하나 찌푸리는 이가 없다. 아름다운 음악이 천막을 때리는 빗소리에 파묻혀 아쉽지만, 그 마음만큼은 그대로 전달된다.
노원혜 사모를 만나 ‘이런 사역이 필요한 이유’를 물었다.
“여기는 어쩌면 재림교회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수준을 가진 봉사자들이 모인 장소일지 몰라요. 복음을 힘 있고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어요. 그 어느 곳보다 말씀의 위로가 필요한 곳인지도 모르죠. 여기서 재림교회에 대해 알게 되고, 예수님의 사랑을 발견해 신앙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아요. 시간이 흐르며 깨끗하고 단정하게 변화되어 가는 분들도 많죠. 기성 신자에게는 봉사를 통해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고, 선교훈련의 장이 되기도 하죠. 작지만 매우 의미있는 활동이 펼쳐지는 현장입니다”
음악에 대한 반응이 좋아 희망자들을 대상으로 오카리나를 가르쳐 꾸준히 연습을 하고, 발표회도 하는 등 문화적 감수성을 키워주는 활동도 계획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들이 교회의 문턱을 어렵지 않게 넘을 수 있도록 좀 더 친숙한 관계를 맺을 생각이다. 참여인원도 현재의 150명 수준으로 200명까지 늘일 마음이다. 영혼에 대한 지극한 사랑 없이는 꿈꾸기 어려운 일이다.
자원봉사나 재능기부 참여 그리고 넉넉한 후원의 손길도 기다린다. 전도지를 나누거나 간식포장, 음악, 안내 등 어느 분야든 상관없다. 무엇보다 화물차 운전봉사자가 절실하다. 동참을 원하는 성도들은 총무 윤인숙 집사(☎ 010-9030-2491)에게 전화해 신청하면 된다.
집회가 끝날 즈음 거세게 내렸던 비가 그쳤다. 짙은 구름 사이로 밝은 햇살이 고개를 내밀었다. 봉사자들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방긋 피어났다.
돌아오는 수요일 오후 2시에도 서울역광장엔 어김없이 천막교회가 십자가를 세울 것이다. 외롭고 소외된 이웃과 어디론가 바삐 발길을 옮기지만 소망 없이 살아가는 지구별 여행자들에게 진리의 소식을 전할 것이다. 사막 같이 메마른 도시의 한복판에 성령의 은혜가 우물처럼 샘솟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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