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교회지남’ 발간 100주년 특집호 커버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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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 김범태 기자
kbtlove@kuc.or.kr
입력 2016.07.01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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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지남의 지나온 길과 가야 할 길 ... 삼육대 이국헌 교수 기고문 발췌
이국헌 교수(삼육대 신학과 / 교회사)
<교회지남>이 출간된 지 어느덧 한 세기가 흘렀다. 재림교회의 한국 선교 112주년, 교육사업 110주년을 맞이하는 2016년은 ‘세텬ᄉᆞ의 긔별’사에서 <교회지남>(敎會指南, Church Compass)을 출간한 지 정확히 100년이 되는 해이다. 한 세기의 성상(星霜)을 지나는 동안 재림교회의 나침반이 되어 오직 붓 하나만으로 재림 신앙(Adventism)을 지켜 온 이 잡지의 역사를 되돌아볼 이유는 차고도 넘칠 것이다.
1916년은 1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때였다. 프랑스와 영국은 독일군의 전력을 약화시킬 목적으로 솜 강 전투를 전개하였다. 영국군은 탱크라는 신무기를 앞세워 공세를 펼쳐 함멜(Beaumont Hammel) 요새를 점령하였다. 전투 과정에서 1차 세계대전 사상 최대인 100만여 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이러한 역사적 비극이 전개되던 시기에 한국은 일제의 지배 아래서 무단 통치의 고통을 겪고 있었다. 한 해 전인 1915년 3월에 일제(日帝)는 ‘개정 사립학교 규칙’을 공포하여 선교사들과 민족 지도자들에 의해서 세워진 교육 기관들을 압박했다. 그해 11월에는 ‘포교 규칙’을 공포하여 종교 기관들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이런 정치적 상황에서 한국에 정착한 각 교파 선교회들은 교회 기관들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절치부심했다. 재림교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시기 한국 재림교회는 합회장 버터필드(C. L. Butterfield, 전시열, 1908~1922) 목사의 지도 아래 교육, 의료, 출판 사업을 전개하였다. 1915년 4월에는 제5회 조선미션 연회가 개최되었는데, 대총회장인 대니얼스(A. G. Daniells) 목사가 직접 내한하여 정문국, 이근억 양인(兩人)에게 목사 안수를 수여함으로써 최초의 본방인 안수 목사가 탄생하였다. 그리고 이듬해인 1916년 7월에 본 교회의 기관지인 <교회지남>을 발행하여 출판 선교의 다변화를 꾀했다.
■ 지나온 길
엄밀한 의미에서 <교회지남>이 재림교회 기관지의 효시는 아니었다. 재림교회는 1909년 3월에 일본 미션으로부터 인쇄기 한 대와 한글 활자를 들여와 순안 사역자양성학교의 교실 한 칸에서 인쇄 사업을 시작한 후 1910년 10월에 <세텬ᄉᆞ의 긔별>을 발간하였다. 원래 <말세복음보>로 발행되었다가 일본 총독부의 영향으로 <세텬ᄉᆞ의 긔별>로 제호를 바꾼 이 잡지는 선교와 교회 기관지 겸용으로 출간되었다. 이는 다음의 출간 취지에서 잘 나타난다.
<말세복음보>의 목적은 “본 교회 교리의 어떠한 것을 천명하고 말세의 특별한 기별을 경고하며 또 신자의 신덕을 견고케 하며 성경 중에 예언의 지식을 더욱 배우기 위하여 발간하는 것이오니 이는 과연 믿는 자의 등불이요 자는 자의 종소리라 하겠도다”(김승원, ‘발간사’).
위의 취지에서 “신자의 신덕을 견고케 하며”라는 문구에서 이 잡지가 교회 기관지의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교인들을 위한 기관지와 일반인들을 위한 선교지를 분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1916년에 교회 기관지로 <교회지남>을 창간하고, <세텬ᄉᆞ의 긔별>은 <시조월보>로 개칭하여 출판 사업의 발전을 꾀했다. 당시 버터필드 목사가 서문에 밝힌 <교회지남> 출간의 목적은 “우리 교회의 신자 간에 통신적 기관이 되고,” 신자들을 “신성한 방면으로 일층 더 인도하며” 신자들에게 “신령적 유익을” 끼치기 위함이었다. 정문국 목사는 <교회지남>의 목적을 “첫째는 하늘에 가는 우리의 지남침이 되며, 둘째는 우리 주린 영혼을 흡족게 하는 신령적 전도인이 되며, 셋째는 교회 통신, 교회의 혈맥”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교회지남>의 100년사는 실로 파란만장하였다. 교회의 존재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그 운명 역시 교회의 운명과 함께했다. 일제 통치의 말기인 1940년대에 일제는 황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교회에 대한 탄압 정책을 자행하였다. 그 결과 1941년에 기관지인 <교회지남>이 폐간되었고, 1943년에는 교회마저 해산되기에 이르렀다. 해방 후인 1945년 12월 다시 속간되었던 이 잡지는 1950년에 한국전쟁으로 인해 또다시 중단되었다가 1952년 12월 호부터 발행되었다. 이런 역사적 부침을 통해 드디어 지난 2007년 10월 호에 이르러 지령 1,000호에 이르는 우리나라 최고령 잡지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였다.
■ 역사적 의의
이제 2016년 7월 <교회지남>창간 100주년을 맞이하여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을 위한 역사적 의의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매달 재림교인들의 손에 들려지고, 매일 아침 기도력을 읽으면서 펼쳐지는 이 잡지는 100년의 역사를 지나오는 동안에 사실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의들을 창출하였다. 만일에 우리가 그 역사적 의의들을 이해하고 있다면 <교회지남>에 대한 우리의 애정은 더욱 애틋해질 것이다.
우선 <교회지남>의 역사적 의의는 우리나라 ‘최고령 잡지’라는 수식어에 잘 나타나고 있다. 한국에서 기독교 출판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해는 1890년이었다. 그해에 기독교서회의 모체인 한국성교서회(The Korea Religious Tract Society)가 세워져 본격적인 출판 사업이 전개되었다. 최초의 출판 사업은 주로 번역 성서 출판에 집중되었다. 그 외에 교리집이나 교회 잡지 등이 출판되었다.
이 시기 일반 출판계에서 출판된 잡지는 <대한자강회 월보>(1906), <서우>(1906), <태극학보>(1906), <대흥학회 월보>(1908) 등이 있었지만 그나마도 대부분 1년 안쪽에 폐간되었다. 대표적인 근대 잡지인 <개벽>, <동광>, <별건곤>, <삼천리> 등이 1920년대에 창간되었던 것을 고려해 볼 때, 시조사에서 발행한 <시조>(1910)와 <교회지남>(1916)은 한국 근현대 잡지사에 있어서 중요한 역사적 의의가 있다.
한글의 발전에 기여한 것 또한 <교회지남>이 가진 또 다른 역사적 의의라고 볼 수 있다. 시조와 더불어 이 잡지 역시 순한글, 신철자법(1937)에 따라서 표준 한글로 출판하였다. 구한말 우리 사회는 신지식인의 등장과 함께 한자 내지는 국한문혼용체가 널리 통용되었다. 그러나 성경 등 기독교 출판물들은 대중화를 이끌기 위해서 순한글체 출판을 고려하였다. 흥사단 한국지부의 기관지로 출간된 <동광>이 1926년에 순한글체로 만들어졌던 것을 고려해 볼 때 <교회지남>이 순한글체(1937년에는 조선어학회가 제정한 신철자법을 채용함.) 출판을 고집한 것은 역사적으로 한글 발전에 크게 기여한 요소가 되었다.
<교회지남>의 역사적 의의 그 세 번째는 한국 근현대사의 역사 편린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것이다. 1941년에 일제의 강압에 의해 정간되고 그 후신으로 잠깐 출간되었던 <교회지침>의 역사, 한국전쟁으로 인해 정간되었다가 1951년 4월 일본 요코하마의 복음인쇄합자회사에서 재간된 역사 등은 바로 그러한 역사적 편린들을 보여 준다. 아울러 이 잡지는 1970년대 산업화와 1980년대 민주화 시대를 지나 1990년대 경제적 성장을 이루는 과정에서 대한민국사의 한 부분에서 우리가 어떤 역사들을 만들어 왔는지를 생생하게 보여 준다. 그 역사란 형식적으로는 재림교회의 역사이지만 큰 틀에서 보면 한국근현대사와 함께한 우리나라의 역사임이 분명하다.
■ 교회에서 <교회지남>의 역할
지난 2009년 시조사에서는 <교회지남> 영인본 한 권을 발행하였다. 해방 후인 1945년 12월부터 1955년 12월 호까지 10년 동안 발행한 잡지를 묶어 2,626쪽의 금박 양장으로 출간된 이 영인본은 이 잡지가 재림교회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알려 준다. 재림교회의 역사 그 자체가 된 <교회지남>은 몇 가지 점에도 교회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첫째, <교회지남>은 교회와 신자 간의 소통의 매체가 되었다. 커뮤니케이션 미디어가 발달하기 전에 인쇄 매체는 유일한 소통의 매체였다. 재림교회가 미국에서 시작되던 초기인 1849년 제임스 화잇은 <현재 진리(The Present Truth)>를 발간하여 교회가 조직되지 않았던 지역에서 교회의 역할을 대신하도록 하였다. 재림 신도들은 잡지를 통해 예배를 드리고, 잡지를 통해 연대감을 얻었다. <교회지남>도 마찬가지였다. <교회지남>은 안식일학교 교과과정, 각 부서(선교부, 매서부, 교회부)의 활동 기사들, 교단의 회계 보고와 통신 안내, 교회 소식들 등을 실어서 교인들의 가정에 전달하였다. 교인들은 이 기사들을 보면서 일체감과 연대감을 가질 수 있었다.
둘째, <교회지남>은 재림교회 신학을 가르치는 교육 매체의 역할을 하였다. 다양한 신학서적들이 출간되지 않았던 시대에 교회 지도자들은 <교회지남>을 통해서 재림교회 신학을 소개해 주었다. 특별히 신학적 이슈가 발생하면 그 이슈들에 대한 정확한 신학적 내용들을 소개함으로써 교인들의 신학적 이해를 넓혀 주었다. 그래서 <교회지남>은 한국 재림교회 신학 발달사를 연구할 수 있게 해 주는 원자료가 된다.
셋째, <교회지남>은 재림교회사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재림교회 내 역사 연구가들이 재림교회사를 연구할 때 제1 자료로 사용하는 것이 바로 <교회지남>이다. 이 잡지 안에는 재림교회 100년의 역사가 보고처럼 간직되어 있다. 위에서 언급한 신학 발달사는 물론이고, 기관 발전사, 조직 발달사, 지역 교회 발전사, 제도 변천사, 한국 재림교회 성장사 등 거의 모든 재림교회 역사가 이 잡지 안에 들어 있다. 이런 사실을 고려해 볼 때 <교회지남>이야말로 재림교회 유·무형문화유산 제1호임에 틀림없다.
■ 가야 할 길
<교회지남>의 역할을 다 설명하기엔 지면의 부족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제 역사적 분석을 정리하면서 이 잡지의 가야 할 길에 대해 성찰해 보자. 우리는 한편으로는 하나님 나라의 신속한 도래를 소망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가 계속되는 동안 그 나라를 지속적으로 확장해야만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 이런 역사적 사명 앞에서 <교회지남>은 과거에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진리의 방향을 이끄는 나침반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잡지가 올바른 방향을 제시할 수 있도록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교회지남>의 발전을 위해서 적극 참여하고, 기도하고 후원해야 한다. 예리한 통찰력을 가지고 시대를 이끌 내용들을 게재해야 하며, 영혼과 골수를 쪼개는 글들을 통해서 교인들에게 신령한 유익을 끼쳐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식견을 가진 많은 필진들의 주옥같은 글들이 생산되어야 한다. 부디 독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교회지남>의 기사들이 더 풍성해지길 바란다.
아울러 후대의 연구자들이 재림교회의 역사를 기록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시대의 기록들을 꼼꼼하게 빠짐없이 남겨야 한다. 역사가 없는 공동체는 결코 존재할 수 없다. 재림교회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나라가 도래할 때까지 어떤 섭리로 우리를 이끄셨는지 자세히 기록해야 한다. 그렇게 하나님의 섭리를 하나씩 기록해 나가다 보면 우리의 소망이 실현될 것이다. <교회지남>은 하늘로 가는 우리 여정의 기록들이 되어야 한다. 그 엄중한 소명을 기억하면서 <교회지남>의 갈 길을 엄숙한 자세로 성찰하는 재림교인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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